11월 26일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규탄 집회를 하러 서울에 갔습니다. 언론노조에서 ‘재벌방송 반대’라고 적힌 검은 깃을 나눠주기에 옷에다 달았습니다.

이에 앞서 저는 YTN이 검은 옷을 입고 방송에 출연하는, 이른바 ‘블랙투쟁’을 시작하고 언론노조가 그것을 받아 안은 뒤로는 줄곧 검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검은 옷에 검은 깃을 달고 있으니 사람들 눈길이 끌리나 봅니다. 지나가면서 힐긋힐긋 쳐다보기도 하고요, 버스 정류장 같은 데서는 대놓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12월 5일이었습니다. 우체국에 갔더니 창구 직원이 깃을 보고 물었습니다. “그게 뭐예요?”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재벌이 방송에 진출하는 데 반대한다는 얘깁니다.” 했습니다.

웃음은 여전히 입에 머금고 있었지만 그 직원은 고개를 조금 갸웃해 보였습니다. ‘재벌은 왜 방송 진출하면 안 되지?’ 하는, 썩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돌아오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그렇다면 방송법 신문법이 어떻고 구구절절 설명을 해야 하나? 그러면 짧게 만나고 헤어지는 조건인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잖아?

그렇다고 “재벌이 조중동과 손잡고 방송까지 차지할 경우 매체 다양성과 언론 공공성이 깨진다.” 하면, 상대방한테 좀 어렵습니다. ‘매체 다양성’․‘언론 공공성’을 다시 풀이해야 한다는 말씀입지요.

제 검은색 반코트 왼쪽 가슴에 달린 '재벌방송 반대'.

그래서 ‘진출’ 대신 ‘장악’을 쓰고, 재벌 지배력을 표현에 넣기로 바꿨습니다. 그 뒤 넷이 물어와 이리 말했습니다. “그러잖아도 영향력이 큰 재벌이, 방송까지 장악하는 것은 반대해야지요.”

그러고 나서 저는 나름대로 제가 참 생각 잘했다고 여기면서 지냈습니다. 어젯밤 제 아들을 만날 때도 그랬습니다. 아들은 지금 대입 미술 공부를 하느라 서울에 가 있습니다.

수능 치고 바로 창원을 떠난 아들을, 한 달 만에 홍익대 앞에서 만났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 그래서 삼겹살 굽는 식당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소주 맥주도 한 병씩 주문했습니다.

아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아빠, 재벌 방송이 뭐예요?” 저는 깃을 스윽 내려보면서 “지금 재벌이 안 그래도 영향력이 센데, 방송까지 하려고 하면 안 되겠지?”

아들이 이랬습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서 하하, 웃기에 왜 그러느냐고 이번에는 제가 물었겠지요. 아들은, 아니에요 했다가, 바로 말을 이었습니다.

웃음을 한 움큼 베어 문 아들. “학원 가면요, 이런 말 많이 들어요. ‘초벌 칠 잘 해라, 초벌 잘못 칠하면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다.’ 그래서요, 초벌 방송이라면 알겠는데 재벌 방송은 도대체 뭘까, 싶었던 거예요.”

한 달만에 만난 아들은 이렇게 웃음보따리를 제게 안겨줬습니다. 물론 이것은 ‘초벌’로 웃은 이야기일 뿐이고요, 우리 부자는 좀 있다 그림 공부 얘기하면서 한 번 더 ‘재벌’로 크게 웃었습니다. 하하, 하하하.

김훤주

현장기록 방송노조 민주화운동 20년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새언론포럼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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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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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14 2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뻘때추니 2009.09.21 15: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
    저도 미대를 간다고 열심히 초벌칠 했던 생각이 나네요.
    재밌고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아드님 미대에 잘 진학하셨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