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이 글을 쓰지 않으려 했다.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소속된 전국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 지부는 집행부가 총사퇴해버린 상태다. 조합원들이 작년 연월차 수당을 제때 받아내지 못한 집행부의 책임을 물어 사실상 불신임한 탓이다. 그렇게 우리 지부는 파업이라는 전쟁을 앞두고 스스로 무장해제를 해버렸다. 그 후 보름이 지나도록 새 집행부 선출도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연월차 수당도 중요하지만, 꼭 그런 방법밖에 없었을까. 참 허무하고, 안타깝고, 부끄러웠다. 그게 이 글을 쓰지 않으려 했던 이유였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비록 집행부는 없지만, 전국 17개 지역신문사 지부가 결의한 '지면파업'은 나름대로 열심히 수행하고 있고, 오늘(29일)은 대의원대회를 열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비대위는 차기 집행부 선출과 함께 지금의 언론노조 파업에도 적극 참여할 방법을 찾기로 했다. 당장 오늘 저녁에 열리는 '언론노조 총파업 사수를 위한 촛불집회'에도 최대한 조합원들을 조직해 참여할 계획이다.


경남도민일보 노조 게시판에 선관위 해체를 알리는 공지글이 덩그렇게 붙어 있다.


어쨌든 우리가 이러고 있는 사이 MBC는 26일 오전 6시부터 실질적으로 현업을 거부하는 파업에 들어갔다. 왜? 복잡한 설명을 다 걷어내고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재벌과 조·중·동, 그리고 정권의 방송장악을 막아내기 위해서'이다.

알다시피 현재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가장 큰 파워는 재벌권력, 정치권력, 언론권력이 갖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기득권 세력이 온전하게 가지지 못한 게 딱 하나 있다. 바로 언론권력 중 하나인 방송권력이다.

신문권력은 이미 조중동을 통해 확실히 장악돼 있다. 방송도 이미 KBS 사장을 강제로 갈아치우고, YTN 사장에 이명박 대통령 언론특보를 파견함으로써 장악시나리오를 착착 진행중이다. YTN은 노조의 투쟁 때문에 좀 문제가 있지만, KBS를 장악하는 데는 거의 성공했고, SBS는 원래 자본이 소유한 민영방송이니 충분히 통제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듯 하다.

이제 확실히 남은 것은 MBC다. 아예 법을 바꿔 MBC를 민영화하여 재벌 소유와 신문·방송 겸영이 가능케 함으로써 조중동과 재벌의 지배하에 두겠다는 것이다.

이걸 MBC 구성원의 입장에서 따져보자. 앞서 이야기했듯이 한국의 3대 권력은 재벌·정치·언론권력이다. 이들이 결합하면 초초슈퍼울트라 파워권력이 된다. 거기에 MBC를 끼워넣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MBC에 근무하고 있는 기자나 PD는 물론 일반 사원들도 한국사회의 최고 핵심권력에 편입되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이렇게 되면 그동안 끊임없이 MBC를 씹어온 조중동도 같은 계열회사가 될 것이다. 거대방송과 거대신문이 서로를 띄워주며 사이좋게 몸집을 불려나갈 것이다. 정부와 한나라당, 조중동이 선전해온 대로 세계적인 거대미디어그룹이 될 것이다. 삼성은 삼성대로, 조중동은 조중동대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또 그들대로, 그렇게 외형상 따로 놀던 데서 벗어나 그들이 방송을 매개로 공개적으로 한몸이 되어 한국은 물론 세계여론을 '선도(?)'할 것이다.

이처럼 가만히 있기만 하면 초초슈퍼울트라 파워권력에 끼워주겠다는데, 왜 MBC 노조와 그 구성원들은 이런 달콤한 유혹을 거부하고 좋은 직장에서 잘릴 것까지 각오하면서 파업을 벌이는 것일까. 물론 이미 권력에 밉보이거나 눈밖에 난 몇몇 기자와 PD들은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잘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찍히지 않은 절대다수의 조합원들까지 이토록 열렬하게 파업에 동참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언론인의 양심상 돈과 권력의 애완견이 될 순 없다'는 순진(!)한 생각이 아니라면 이럴 순 없을 것 같다.

특히 우리처럼 재벌은커녕 변변한 향토기업의 자본도 없이 6300여 시민주주의 푼돈을 모아 창간한 작은 신문사의 구성원들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권과 한나라당의 의도대로 언론 7대 악법이 통과되어도 MBC라는 방송사가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작은 신문사가 죽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미 지역 신문시장은 조중동의 무차별적인 경품과 무가지 공세로 초토화 상태다. 그나마 신문법상 보장된 '여론다양성' 조항과 '무가지·경품 금지' 조항 덕분에 겨우 연명해오고 있다. 하지만 정권과 한나라당은 지역신문 생존의 최소조건인 그 두 개 조항마저 삭제해버렸다. 신문발전기금과 지역신문발전기금도 삭감해버렸다.

따라서 정작 생존권 투쟁, 밥그릇 싸움을 벌여야 할 곳은 MBC가 아니라 지역신문들이다. 가장 앞장서 목숨 걸고 싸워야 할 경남도민일보 지부가 하필 이 때 무장해제해버렸으니 땅을 칠 일이다. 방송노조 동지들께 정말 부끄럽고 미안하다.

※미디어스에 기고했던 글을 좀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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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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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릴캣 2008.12.29 1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연월차수당이 뭐에요, 먹는건가요?
    (......ㅠ.ㅜ)

    ....암튼 여기저기서 경남도민일보 소식은 많이 듣고 있고, 지방에서나마 양심을 지켜 언론의 도리를 걸어주시는 것에 대해서 무척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이번 일이 빨리 해결되어 경남도민일보도 언론을 지키는 데 한 몫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김한규 2008.12.29 2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지는 싸움인지도 모르지요. 자본주의를 거슬러 불화를 체질로 삼아 혼자서 걷거나, 연대의
    실마리를 이어 실타래를 묶는다 해도 그것은 기실 지는 싸움이기 십상입니다. 근대 계몽이
    자본의 힘을 입어 권력이 되고, 그 시하에서 계몽을 습득한 시정잡배들이 계몽의 '제스처'를 남발
    하는 것은 제도적 위계 구조 위로 가볍게 상승하기 위한 졸렬한 도구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80년대의 빛나던 '반체제 투사'들이 90년대 들어 제도적 위계 구조 속으로 훌훌, 가볍게
    걸어들어 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올곧게 불화의 체질로 거슬러 간다는 것은 결국 '진다'라고 졸렬하게 항복하며 그들 역시
    체제의 유지와 재생을 위해 사실상 하수인으로 명패를 얻어 걸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지는
    싸움을 알지만, 부단히 거슬러 오르는 불화와 연대는, 김영민의 말을 빌면 "싸우면서 닳지 않을 수"
    있는 당당한 '독립'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근세 실학의 메타 제도적 비판 의식의 연대를 계승하지 못한 것이 뼈아플 따름이지요.
    생각보다 말이 장황해졌습니다. 요즘 저는 이제 오십줄에 들면서 '길게 가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뭐, 그것은 당연히 오래 똥칠하면서 살겠다는 것은 아니구요. 근 20여년동안 지식인들에게 단골메뉴
    로 등장해 지지고 볶였던 '생태' 나 '살림' '생명' 같은 것(물론 그 의미는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에서 조금 떨어져(사실 저는 그런 것을 잘 모르기도 합니다) 성숙한 비판적 메타 의식을 제대로
    갖추어야 하겠다는 자성입니다.

    지금 경남도민일보도 누구보다 열심히 싸워야 하겠지요. 그러면서 길게 가는 힘을, 또한 보다
    실천궁행(實踐躬行)의 낮은 자세를 보여줘얀 하겠지요. 제가 좀 외람된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주완님이야 제 자성의 거울이지요^^. 송구영신으로 건필하시고 열심히 싸우십시오.

  3. 2008.12.30 0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하리마우 2008.12.30 0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민일보...솔직히 말로만 진보 진보 하면서..이럴땐 발을 빼고...솔직히 도민일보는 흉내만 내는 신문사임..진짜 중요한건 잊고 가는 신문사..도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