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책을 난잡하게 읽는 편입니다. 한 책을 읽다가 어떤 대목에서 관련되는 다른 부분이 생각나면 바로 다른 책을 끄집어내어 읽고는 합니다. 이러다 보니 제 책상에는 언제나 책이 너절너절하게 쌓여 있기 십상입니다.

1. 10만년 전 이라크 샤니다르 동굴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중3 되는 딸에게 주려고 조경철 씨가 쓰고 사계절에서 펴낸 ‘문화로 읽는 세계사’를 샀습니다. 한 장 두 장 뒤적이다 보니 재미가 있어서 줄줄 읽고 말았습니다. 두어 시간 읽다가 책을 덮으려는데 눈길을 끄는 부분이 띄었습니다.

19쪽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네안데르탈인)이 약 10만 년 전쯤부터 시체를 매장했다는 사실이다. 유명한 매장지의 하나가 이라크 자그로스 산맥에 있는 샤니다르 동굴이다. 30세 정도의 네안데르탈인 남자가 매장되어 있는데, 돌로 터를 잘 잡고 그 위에 흙을 덮은 다음 많은 꽃을 덮어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물들은 죽으면 그냥 그 자리에 버려지고 만다. 오직 인간만이 죽은 동료의 시체를 정성껏 묻어 준다. 시체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매장했다는 것은 이 시기의 사람들이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그 투박한 ‘원시인’도 사실은 종교인이고 문화인이었던 것이다.”

여기를 읽다 보니 우리나라에도 이런 매장지가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듯해서 책꽂이를 뒤졌습니다. 다행히 오래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휴머니스트에서 발행한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 1’이었습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지은이로 돼 있습니다.

2. 4만년 전 충북 청원 두루봉동굴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 책은 절대 교과서가 아닙니다. 교과서가 이렇게 만들어지면 좋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만든, 실제로 학교에서는 교과서로 쓰이지 않는 책입니다. 이 책 46~47쪽에, ‘흥수아이, 다섯 살짜리 청소년’이라는 제목이 나옵니다.

책에도 실려 있는 사진입니다.

“1983년 충북 청원군 두루봉 동굴, 석회석 광산을 찾기 위해 산을 헤매던 김흥수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굴 속을 살펴보다가 사람 뼈를 보고 흠칫 놀랐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세히 등을 비춰 보니 키 110~120cm 가량 되는 어린아이의 뼈였다.

발견 당시 이 뼈는 석회암 바위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모습이었는데, 뒤통수가 튀어나와 제법 귀여운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이 뼈를 흥수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흥수아이의 나이는 5살가량으로 추정된다.

……주검 위에는 고운 흙이 뿌려져 있고, 둘레에 꽃을 꺾어 놓아둔 흔적이 있었다. 성분 분석 결과 국화꽃임이 밝혀졌다. 가족들은 흥수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그를 땅에 묻고 영혼을 보내는 장례 의식을 치렀던 것으로 보인다. 국화꽃, 어쩌면 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꽃이었을지도 모른다.”

3. 상상력 키우고 감흥도 주는 두 장례식
책에는 연대 따위가 자세히 나와 있지 않고 그냥 구석기 시대라고만 돼 있습니다. 따로 알아봤더니 흥수아이가 살던 시대는 4만년 전으로 짐작이 된답니다. 그리고 꽃이 국화가 아니고 진달래라는 얘기도 있더군요. 아, 흥수아이 뼈와 복원 모형이 충북대 박물관에 있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됐습니다.

아울러 ‘문화로 읽는 세계사’의 샤니다르 동굴 네안데르탈인을 두고도 알아봤는데, 6만년 전이라고도 하고 4만6900년 전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 흥수아이의 시대와 이라크 샤니다르 네안데르탈인의 시대가 그리 크게 차이 난다고 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어쨌거나, 재미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와 이라크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데, 그리고 그 사이에는 높고 험한 산이 가로 세로 놓여 있어서 당시 서로 왕래가 있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할 지경인데 어쩌면 이리도 닮았을 수 있을까요?

같은 동굴입니다. 똑같이 매장을 했습니다. 아래에 바위가 있고요, 위에는 흙을 뿌려 덮었습니다. 그런 다음 꽃을 꺾어 얹었습니다. 서로 아무런 교류가 없었지만 같은 인간이다 보니 둘 다 비슷한 장례식을 치른 셈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4. 국정 교과서는 다루지 않는 사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이런 얘기가 나오지 않습니다.(새로 바뀐 교과서도 마찬가지리라 짐작합니다만.) 첫머리 ‘선사(先史)시대의 전개’ 18쪽에는 구석기 시대 유적 발굴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만 흥수아이가 아닐 뿐 아니라 적어도 제게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석기 시대 유적 발굴 모습과 주먹도끼(경기 연천 전곡리)라 적혀 있는데 전문가가 아니면 그냥 무엇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또 19쪽에 관련이 되는 듯한 기록이 딱 한 줄 나오는데 그것은 이렇습니다. “시체를 매장하는 풍습을 지니게 되었다.”

이보다 더 무뚝뚝할 수는 없습니다. 일부러 역사적 상상력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 같습니다. 교과서는 전체를 함축해야 하고 따라서 압축.추상을 할 수밖에 없다 해도, 아주 중요하고 뜻도 깊은 역사 장면일 텐데 이리 코빼기도 비치지 않도록 하다니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와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 1’, ‘문화로 읽는 세계사’ 세 권을 책상 위에 꺼내 놓게 된 사연입니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저는 또 이렇게 역사책을 읽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교과서를 읽는 괴로움까지 한꺼번에 확인을 하고 말았습니다.

김훤주

장례의 역사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박태호 (서해문집,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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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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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철부지 2009.01.12 0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과서를 읽는 괴로움... 그 표현한번 시원합니다.
    잘 읽고 좋은 글 함께 퍼갑니다 (물론 출처와 바로 가기 링크 필수지요^^)
    한주도 힘차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2. 실비단안개 2009.01.12 12: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직접적인 교류가 없더라도 생각이 비슷한 모양입니다.

    교과서가 호기심을 유발해야 마땅한테, 대부분 결과만 나열하는 것 같습니다.
    고지식한 이들을 보고 교과서처럼 산다고까지 하니까요.
    예나 지금이 학생들이 불쌍하기는 마찬가지네요.

    바람이 많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셔요. 두 분!

    • 김훤주 2009.01.12 15: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 진짜 그런 것 같습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에 보면, 그런 실험과 보기가 생생하게 나와 있어요. 저도 놀랐습니다.
      서로 아무 연락이 없었는데도 어떤 한 생각이 동시다발로 여러 지역에서 확인이 되는 그런 장면이었습니다.
      선생님도 건강하시고요, 나날이 복 많이 지으시기 바랍니다. ^.^

  3. 전진호 2009.01.13 21: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아이+어른들도 좀더 많은 책을 읽었으면 합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을 보면 참으로..흥수아이는 아직 연구중이거나, 異論이 분분하기에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저희가 배울때는 흥수아이도 없었고, 비파형 청동검도 국내에서 발견되기 전이었고,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이어주는 증거가 없었던 때였습니다. 각설하고, 교과서는 참으로 잘 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글 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이 한문장이 우리들 머리 깊숙하게 박혀 버렸나 봅니다. 우리의 예술이 세계로 나갈 전략중 한 방향을 제시한 글입니다.그러나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그 문장이 인용되고 거기서 더 이상의 진전도 변화도 없음을 발견할 때 마다 깊은 좌절감을 느끼면서,정말 교과서는 잘 만들어져야 겠다고 생각하며 교과서외의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우리 교육환경을 걱정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