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으로 시 한 수 읊어봤거나 글 한 줄 써본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있다. 환경운동을 위해서라면 말글쯤은 아무렇게나 써도 좋다는 사람도 반드시 읽어야 한다. 내 친구 김훤주가 쓴 <습지와 인간>(산지니 간)이라는 책이다.

'인문과 역사로 습지를 들여다보다'는 부제와 같이 이 책은 단순한 습지 소개서가 아니다. 습지와 함께 끊임없이 교감하며 살아온 사람이 있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있다.

나는 환경주의자라거나, 생태주의자는 아니다. 굳이 무슨 무슨 '주의'를 따지자면 인간주의에 가까울 것 같다. 그래서 환경을 무조건 '보호'의 대상으로만 본다든지, 사람이 좀 편리하도록 이용이라도 하면 큰 일 날듯이 하는 모습들이 가끔 못마땅하다.

이 책은 습지를 다루긴 했지만 자연 상태 그대로의 습지만을 고집하진 않는다. 책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습지는 어떻게 존재해왔을까요? 자연 상태 습지를 떠올려보면 바로 답이 나오니까 어찌 보면 좀 어리석은 물음이기도 하겠네요. 하지만 예로부터 지금까지 인류 등장 이래 자연 상태 습지란 것은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그 '자연 상태'가 '인간이 배제된'이라는 뜻이라면 말입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습지는 바로 우리 인간의 삶의 터전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환경만 보일뿐 똑같이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 아래 숨통이 끊어져 가는 우리 토종말'을 보지 못하는 환경단체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내지른다.

 "토종말이야 죽든 말든 어쨌거나 소중한 습지가 더 많은 사람들 눈길을 끌어 개발하고 매립하려는 행정 관료들에게 압력을 행사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소벌이 됐든 우포가 됐든 상관이 없다는 태도입니다. 개발만 된다면, 돈벌이만 된다면, 자연이나 생태는 망가지고 부서져도 전혀 상관없다는 토목 건설족이랑 똑같은 사고방식이라고 저는 봅니다."

진주 장재늪. /유은상 기자


심지어 말글을 다루는 문인들의 한심한 작태들에 대해서도 그는 "머리를 쪼개어 두뇌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나 조사해보고 싶다"고 한다. 쪼개어보고 싶다는 머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제한다. 다만 그가 왜 그런 분노를 느꼈는지는 미리 알려드릴 필요도 있겠다.

 "우포는 소벌의 중국글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땅 모양이 꼭 물을 먹으려고 목을 길게 뺀 소대가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옛날부터 소벌이라고 일러왔습니다. 소벌이 유명해지자 시인들이 찾아와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소목에다가 목덜미를 뜻하는 중국글 항(項)을 박아 넣고는 우'황'(놀랍지요!)이라 적습니다. 아득한 정밀(靜謐) 속에서 터지는 웃음을 우화(羽化)!라고 한자말로밖에 못 나타냅니다. 늪이라 하면 그만일 텐데도 소택지라 뇌까립니다. 소벌에는 판자로 만든 거룻배만 떠다니는데도 그것을 일러 (통나무로 만든) 쪽배라고 말합니다. 진짜 슬픔은, 이렇게 하면서도 그 잘못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 지역에 이렇게나 습지(또는 늪이)가 많았나'하고 놀랄 정도로 다양한 습지를 순전히 발품으로 알려주고 있다. 또 밀양의 습지나, 창원의 습지, 창녕의 습지가 각각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려준다. 이 과정에 역사학자도 찬조출연하고 환경전문가나 사진기자, 습지 주변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들도 등장한다.

습지에 대한 저자의 취재는 내가 경남도민일보 시민사회부장으로 있을 때 이뤄졌다. 하지만 당시에도 신문에서 흔히 보는 그냥 '기획 시리즈 기사'가 아니었다. 요즘 언론학에서 이야기하는 내러티브 또는 논픽션 스토리텔링이었다.

그 때 거의 날마다 출장을 다니며 마감에 맞춰 기사를 써내는 그를 보면서 저런 무모할 정도의 정열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궁금했었다. 이에 대해 그는 책 머리에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돌아가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2006년 가을과 겨울 '습지의 역사, 사람의 삶'을 주제로 기획취재를 하던 때로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기자 노릇을 한 뒤로 그때가 가장 즐거웠습니다. 습지의 다양한 모습과 끈질긴 생명력을 몸소 보고 듣고 하면서 무슨 오르가즘 비슷한 쾌감에 빠져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럼 그렇지. 그런 오르가즘 같은 게 없고서야 그토록 미친 듯 할 순 없었겠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습지와 인간을 알고 소벌을, 주남을, 남강과 장재늪을 보면 그가 느꼈던 오르가즘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을지 또 누가 알겠는가.

습지와 인간 - 10점
김훤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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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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