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랑 같이 팀블로그를 하고 있는 김주완 선배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일본군 위안부’ 전문기자라 할만합니다. 최근에 올린 관련 글만 해도 목록이 이렇습니다.

“아버지, 이제야 60년 한을 풀었습니다”, 학살 유족 “지리산을 동해에 던지고 싶었다”, 한국군 민간인 학살, 60년만에 진실규명 결정, 이스라엘군 민간인 학살, 한국군 학살은?

이런 글을 보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시집(詩集)을 하나 꺼내 읽어도 학살과 관련되는 작품들에 눈길이 한 번 더 가곤 합니다. 참 꿀꿀한 노릇입니다.

올해 들어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든, 오하룡 시인의 시집 <내 얼굴>에서도 그런 시를 몇 편 만날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쉽게 읽고 뜻도 잘 알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먼저 ‘곰절 골짜기’입니다. 곰절은, 창원 사람이면 대부분 아는데, 지금은 다들 성주사(聖住寺)라고 하는데 창원 동쪽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나염 화상이 지었다는 절간입니다.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옛날 60년 전 여기 이 골짜기에서도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증언입니다. 여태 증언은 몇 차례 나왔지만 발굴이라든지가 이뤄지지는 않았는줄 압니다.

곰절 골짜기

육이오 동란 직전이었지 곰절 골짜기 어디쯤
아무도 모르게 몰살당한 주검의 끔찍한 소문
무서움에 떨며 들었지 내 친한 친구의 형님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검은 큰 구덩이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어 팬티 고무줄 보고 찾았느니
허리띠 보고 찾았느니 어른들의 숨죽인 목소리
어린 우리들은 다만 벌벌 떨고만 있었지
그런 사실 좌우익 서툰 대립이 빚은 통분의
양민 학살이었음을 뒤늦게 알았으니 어쩌랴
휴일이라고 무슨 기념일이라고 놀이 삼아
그대들은 곰절 골짜기 좋다고 찾아들지만
끝내 광인 되어 머리 풀고 배회하던 형수 모습
지금 내 시야 막으며 드러나는 검은 구덩이

어딘지가 나와는 있지 않지만, 학살당하기 직전에 풀려난 이야기도 함께 적혀 있습니다. 작품 ‘생환’에 나오는 수필가 하길남은, 1934년생으로 먼저 수필로 등단해서 시집도 여러 권 내셨습니다. 평론 활동도 하시지요.

오하룡 시인은 그보다 여섯 살 아래인 1940년생이십니다. 두 분 공통점은 태어난 데가 일본이고 해방과 더불어 돌아왔다는 점입니다. 먹고살기 어려워 그이 어버이들께서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시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어쨌거나 오하룡과 하길남 두 분은 줄곧 창원 마산을 떠나지 않고 살아오셨습니다. 마산과 창원에서는 여태껏 시집에 나온 것 말고도 여러 곳에서 수백 수천 명이 학살당한 자취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생환生還

좌우익 대립의 그 살벌하던 시절
젊고 패기 찼던 그도 꼼짝없이
비극의 주인공이 됐을 판이다

“끌려갔지요 시동 걸린 트럭에는
사람들이 넘칠 듯 승차해 있었지요
난데없이 살기 띤 사복 하나가
×자식, 너 같은 놈은 죽어야 돼!
거친 폭력을 행사했어요
이 악질새끼는 내가 처치하겠어!
그 사복은 친한 친구였어요
트럭이 떠나자 얼떨떨해 있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어요
야! 빨리 집으로 가!”

평생 유능 공직자로
지금 자랑스레 정년하고
만년을 문학에 전념하는 그는
이제 안온하고 여유롭다

내 존경하는 수필가
하길남은 나에게 극적인 젊은 날의
한 페이지를 열어 주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우리나라는 그 자체가 커다란 박물관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이 시들은, “그보다 우리나라는 그냥 통째로 커다란 공동묘지다.”고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지금 저에게 우리나라는, 아무리 시집을 읽어도 마음이 차분해지지도 않고 가라앉아지지도 않는 그런 나라입니다. 제 이런 느낌에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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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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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남도민일보힘내세요 2009.01.20 0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시를 읽고 아파하는 감수성이 남아있을 줄 몰랐습니다. 기자라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이 그런 놀라움을 더 키운 것도 사실이고요.

    학교 다닐 때 소풍 가면 대개 나즈막한 인근 산야로 갔는데, 어린 제가 대체 뭘 알았는지 거기 앉고 눕고 그러는 게 께름칙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덤이 너무 많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요. 하여간 그러다가 나중에 더 커서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한국현대사를 알게 되자 그 무서움이 더욱 커졌습니다. 끔찍한 기억을 속에 품으신 분들이 아직 여러 분 살아남아 계시겠지요.

    그 일들을 담담하게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색깔 귀신'도 힘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걸어봅니다.

    • 김훤주 2009.01.20 1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셨군요. 제 고향 창녕의 초막골을 지날 때면 저도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거기도 학살이 벌어진 곳이거든요.

      그리고요, 감수성이랄까 따위가 그리 세지는 않지만, 남아는 있습니다요. 기자들은 그런 감수성이 남아 있지 않으리라 선입견이 있으셨다니, 평소 기자 나부랭이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알겠습니다. 더욱, 자세를 가다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 앞산꼭지 정수근 2009.01.20 0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끔직한 시절을 그대로 보여주는 생생한 '시'네요.
    자연을 찬미해야 할 시로 이런 끔찍한 장면을 묘사해야 하는 저분들의
    절박한 가슴이 그대로 전해져 속이 시립니다.

    저는 이와 비슷한 심정을 지금의 '삽질'을 통해 느낍니다.
    저 시절을의 끔찍한 학살과 착취의 대상이 요즘은 바로 자연인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대구의 유명한 산인 앞산은
    전국적으로 문제인 '민투사업'으로 그 앞산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관통이 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무려 4.5킬로나 되는 거대한 터널을 이 21세기 환경문제가 상식이 되어버린 이 새천년에
    아직 박정희식 막개발의 환상을 이 삽질공화국은 가지고 있고,
    그에 덩달아 대구시도 편승해서 막가파식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최근 이곳 공사현장에서는 선사시대 유적이 나와서 문화재청의 공사중지 명령이
    있었는데, 이를 무시하면서까지 말입니다.)

    이 민투사업의 폐해에 대한 것도 기사로 한번 다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구 앞산의 자료는 제 블로그로 들어오시면 얼마든지 있고요,
    앞산에 관해 추가적인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응하겠습니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검토 한번 해주십시오.

    그리고 누리꾼 여러분들도 이 민투사업의 폐해에 대해서
    눈을 뜨고 살펴보십시오. 전국적인 문제라서 곳곳에 이런 블랙홀이 있습니다.

    앞산의 문제는요.
    무려 26년간이나 통행료를 편도 1,700원씩 받아가고,
    이 통행료가 부담이 되어 차량이용이 줄어들 경우,
    그 적자분을 대구시민의 혈세로 건설업자들에게 보전해줘야 합니다.
    대구는 도로율이 전국 1위인데도, 이런 공사를 백치행정은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앞산의 숲은 사라지고, 우리들의 '까마눈'에는 절대 포착되지 않는
    무수한 생명들이 몰살되는, 생매장되는 비극을 또다시 겪게 되는 겁니다. 대구의 심장이 뚫리는 일입니다.

    그러니 이 점 각별히 유념하시고, 바라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훤주 2009.01.20 1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생님, 고맙습니다. 앞산 문제를 기사화해보라는 요청도요. ^.^

      그런데요, 아시다시피 종이신문을 주로 하는 지역신문은, 대체로 취재 영역을 정해 놓고 있는데요, 저희 경남도민일보는 경남을 주된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때는 제한적으로 우리 기자를 보내 취재 보도하기도 했지만, 지금 저희 시스템상으로는 선생님 하시는 일을 취재 보도하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안합니다.

      허락하신다면, 선생님 블로그에 들러 자료는 가져오겠습니다. 그리고 경남 지역에 비슷한 사건이 생기거나 생길 기미가 보이면 해당 부서에 그 자료를 건네겠습니다.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Orz..

    • 앞산꼭지 정수근 2009.01.20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그런데 종이신문을 염두에 두고 말씀드린 것이 아니라, 블로그 기사로 다뤄보시면 어떨까 해서요. 이 블로그를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있으니, 파급력이 있지 않를까 해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한 지역의 문제로 앞산 문제를 단독으로 다뤄주셔도 좋고, 민투사업의 폐해에 대한 종합기사 형식도 좋구요. 암튼 한번더 생각해주시면 고맙겠구요...

      내친 김에 한가지 더 여쭤보면,
      제가 아직 블로거 초짜라서 잘 몰라서 그러는데,
      트랙백 걸려는 기사 중에서 다음 블로그 기사들이 죄다 트랙백이 걸리지 않는데 그 이유를 몰라 애태우고 있습니다.

      특이 사항이라곤 제가 다음에도 블로그를 하나 개설해 놓았다는 것뿐이고, 블로그 뉴스에는 티스토리로 전송을 보낸다는 것뿐입니다.

      하여간 여간 애가 타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소통하면서 블로거로서의 위치를 자리잡는 것 같은데, 그것에 제약이 있으니 저로선 너무 답답합니다.
      혹, 방법을 아시면 귀뜸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꾸벅!

    • 김훤주 2009.01.20 1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슨 말씀이신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장담은 못 드리지만 그리 애써 보겠습니다. 저도 앞산을 보면서 자란 때가 있습니다. 대구에서 4년 남짓 학창 시절을 보냈지요. 하하.

      기술적인 부분은 제가 잘 모르는데요, 저랑 같이 블로그를 하는 김주완 선배한테 물어 보겠습니다. 건강이 으뜸입니다. 건강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활동하는 사람을 두고 '인민의 적'이라 하더군요. ^.^

    • 앞산꼭지 정수근 2009.01.21 04: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민의 적'....ㅎㅎ.
      일면 이해가 되는 말이네요.
      명심토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3. 김주완 2009.01.20 1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보다 우리나라는 그냥 통째로 커다란 공동묘지다.”
    이 표현은 한홍구 교수가 비슷하게 먼저 썼죠.
    "우리는 지금 무덤위에 서 있다. 우리나라 국토 중 학살 터가 아닌 곳이 거의 없다." 뭐 이런 표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좀 딴 이야기인데, 저는 경계선에 서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시인이라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4. 하루 2009.01.23 14: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끔찍한 일이 1950년에 벌어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학살만 말하지 그 원인은 눈감는다.

    북한이 남침하자 그동안 남한에 전향했던 전직 좌익인 보도연맹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북한을 배신했으니 자신들은 북한군에게 죽은 목숨이었다.
    그래서 북한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려고 전쟁과 동시에 지역에서 좌익 봉기를 일으키고 주민 학살, 경찰과 국군 등에 칼을 꽂는 공격에 나섰다.
    이러한 사태는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그래서 보도연맹 처단 명령이 내려진것이다.
    이 와중에 애꿎은 사람도 많이 희생된것도 사실이지만, 김일성이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죽지 않을 사람들이 었고, 전쟁이 났어도 대한민국을 배반하지 않았다면 역시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학살의 원흉은 소련을 등에 업고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 동족을 죽인 김일성에게 있는데,

    요새 정신나간 놈들은 김일성을 훌륭한 지도자로 인식한다는 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