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진주KBS 라디오와 최근 두 건의 민간인학살 관련 법원 판결에 대해 전화인터뷰를 했습니다.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 앞에 썼던 글과 다소 비슷한 부분들도 있지만, 기록삼아 포스팅합니다.

진주 KBS 라디오 프로그램 시사매거진-진주 투데이
-담당  PD : 김해천 , 진행 :  김하희
-담당 작가 : 신미연
-방송 일시 : 2009년 2월 17일 화요일 오후 3시 20분

진행자 = 한국 전쟁을 전후해 우리나라에서는 국군과 경찰 등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민간인 학살은 우리 역사에서 잊혀지도록 강요당한 기억인데요.

이런 가운데, 최근 서울중앙지법이 울산보도연맹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유족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앞으로 도내에서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소해배상 청구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전화 연결돼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주완 =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 서울중앙지법이 울산보도연맹 희생자 유족들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는데요.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소개를 좀 해주시죠.

서울중앙지법은 1950년 울산보도연맹 희생자 유족 500여 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국민들이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서는 좀 설명이 필요한데요. 보도연맹은 1949년 당시 이승만 정부가 좌익활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는 차원에서 만들어 사실상 국가가 관리하던 단체였는데요. 좌익전향자 단체라고 했지만, 사실은 각 지역마다 인원수를 할당하는 바람에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도 강제가입하거나, 좌익과는 관계없이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던 사람들까지도 무차별 가입시켰던 단체였습니다.

이 단체의 총재는 내무부장관이 맡았고, 고문은 법무부장관과 국방부장관이었습니다. 또 검찰과 경찰 간부들이 하부 단체의 지도위원장 또는 지도위원을 맡아 관리하던 단체였는데요, 수시로 반공 강연회를 열거나 관청의 공사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들 보도연맹원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만으로 전국 곳곳에서 가입자들을 체포해서 산골짜기에서 총살하거나, 바다에 수장시켜버리는 엄청난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울산에서도 유골을 수습한 숫자만 829명에 이르는 집단학살이 있었는데요. 이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위원회가 2007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번에 승소한 것입니다.

진행자 = 이번 판결은 학살 자체뿐 아니라, 국가의 은폐행위까지도 책임을 물었죠?

그렇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제19민사부(재판장 지영철 판사)의 이번 판결은 군경의 민간인학살이 명백한 '불법행위'였음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사건 이후 그 사실을 은폐하고 적법하다고 주장해온 국가의 행위 또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 국가는 이미 시효가 끝났다고 주장했는데요. 하지만 재판부는 "국가가 시효완성 전에 유족의 권리 행사나 시효 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한 경우, 그러니까 다시 말해 국가가 유족의 진상규명 요구를 방해 또는 외면해놓고, 이제 와서 시효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 남용"이라고 판시했습니다.

진행자 = 반면, 문경 석달동 학살 사건은 유족들의 소송이 기각됐죠?

그렇습니다. 문경 사건은 1949년 대한민국 국군이 공비토벌을 빙자해 석달마을 주민 127명 중 어린이와 노인 등 88명을 학살한 후, '공비가 저지른 만행'으로 조작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 역시 보도연맹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불법행위임은 명백하게 드러나 있고, 진실화해위도 2007년 6월 "국군이 비무장 민간인들을 어떠한 선별절차나 법적 근거 없이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하게 학살한 사건으로 명백한 위법행위"라고 규정했는데요.

그러나 재판부는 "유족들이 국가기관에 진실규명을 지속적으로 요청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유족들 자신은 문경학살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늦어도 유족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때인 2000년 3월 18일부터 소멸시효기간인 3년이 훨씬 경과한 때에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면서 유족들의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진행자 = 하지만, 이 사건도 국가의 책임은 인정한 거죠?

예, 문경 사건에 대한 아쉬운 판결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의 학살사건 자체를 "국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불법행위인 점은 명백하다"고 명시한 것이라든지, "국가인 피고로서는 국가배상법상의 의무 이행 문제와는 별도의 차원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의 취지에 따라 국민 전체의 여론과 국가 재정, 유사사건의 처리문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상의 권고사항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 관련 법령을 마련하는 등으로 원고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이다"라는 재판부의 의견을 판결문에 명기한 것이 그렇습니다.

진행자 = 이번 판결에 대해 유족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울산보도연맹 사건에 대해서는 당연한 판결이라는 입장입니다. 국가가 범죄를 저질러놓고, 그 진실을 규명하기는 커녕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을 체포해 사형 또는 무기징역까지 선고하고 감옥에 복역시키는가 하면, 심지어 4.19혁명 직후 유족들이 겨우 발굴한 희생자의 유골과 유류품까지 모두 압수해 산산이 흩어버렸던 게 우리나라 정부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렵사리 2005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제정됐고, 그 법에 의해 진실규명이 이뤄졌으니 국가가 뒤늦게라도 피해자에게 배상을 하고 원혼을 풀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문경사건의 경우, 이번 소송에 앞서 국가가 법을 제정해 진상규명을 해달라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냈다는 이유로 '왜 그때 손해배상 소송도 내지 않았느냐'며 시효가 끝나서 배상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문경 유족들은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산청군 시천면 외공리에서 발굴된 학살 유해들. 모두 팔이 뒤로 꺽인 채 엎어져 있었다. @김주완

진행자 = 그렇다면, 이를 계기로 앞으로 도내에서도 유족들의 손해배상 소송이 이어지겠군요?

그렇습니다. 당장 경남도내에서도 얼마전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김해 보도연맹 유족 270여 명과 산청군 시천·삼장면 민간인학살 유족들, 그리고 함양군 유족회와 거제유족회는 물론 앞으로 진상규명 결정이 예상되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소송을 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앞으로 잇따를 소송과 그 결과에 좀 더 관심을 가져봐야겠군요?

판사는 법률에 의한 판단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개별 사건별로 다소 상반된 판결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사건은 인류의 보편적 상식에 비춰봤을 때 모두 동일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소송을 통한 해결을 추진하면서도, 동시에 희생자와 유족의 피해에 대한 합당한 배상을 담은 법률을 입법하는 노력도 함께 병행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국회는 대한민국 정부가 세계사에서도 유례없는 반인권 범죄를 저지른 일에 대해 이제라도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합당한 배상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입법을 서둘러야 합니다.

진행자 = 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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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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