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재일 조선인’ 서경식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경남대학교 사회학부 김재현 교수 소개로 만나 인터뷰 기사를 썼었지요. 밤늦게까지 얘기를 나눴는데 만나서 뿌듯하다는 느낌과 함께, 참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이 꾸물꾸물 기어 올라왔습니다. 거북했습지요.

그리고, 그 때는 전혀 몰랐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이는 대한민국 지식 풍토에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개념을 들여놓은 여럿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 명입니다. 디아스포라. 모르시는가요? 우리말로 옮기면요 ‘난민’쯤이 되겠습니다.

대문자 디아스포라는 ‘유대 난민’이라는 좁은 뜻이지만 소문자로 시작하면서 ‘난민 일반’으로 뜻이 넓어졌다 합니다. ‘뿌리 뽑힌 이’지요. 그러므로 재일 조선인 서경식도 난민이고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독일에 머문 음악가 윤이상도 난민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도 더할 나위 없는 디아스포라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고국에서 뿌리 뽑혀 일본군 주둔지로 끌려간 데 더해 고국에서 한 번 더 버려졌으므로 ‘이중’ 난민이라 해야 하겠지요.


‘난민’ 서경식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묻습니다.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제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중 기준인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일본의 조선 침략은 나쁘지만 대한민국의 베트남 침략은 좋다, 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반공(민주) 세계 수호’ 따위를 내세워 베트남 침략을 합리화합니다. 그렇다면 일제에도 명분과 까닭이 뚜렷하게 있습니다. ‘황색인종 대동단결’입니다. ‘미영축귀(米英蓄鬼-짐승이나 악귀 같은 미국 영국)’에 맞서려면 ‘대동아 공영권’을 구축해야 했었습니다.
 
 난민 서경식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보내는 물음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게다가, 우리나라 ‘국민’은 재일동포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는 일본 정부는 ‘욕하면서도’ 우즈베키스탄이나 베트남 몽골 같은 데서 온 이들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는 우리나라의 처사에 대해서는 대부분 ‘당연하게’ 여긴다지요.

우리가 지난날 겪은 ‘고통’을 ‘기억’하고 있다면 지금 다른 이들이 겪는 ‘고통’과 ‘연대’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고 서경식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경식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깊으면 깊을수록 아프고 불편한 까닭이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서경식은 이렇게 짚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거(사과와 보상)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는 것하고 베트남전쟁하고 이중 기준이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87쪽)

그러면서 현실을 핑계 삼아 이중기준을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려는 경향에 대해서는 이렇게 일러줍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데 못 하는 것하고, 어차피 못 할 일이니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하고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릅니다.”(87쪽)

현실을 기준으로 삼아 옳고 그름이나 당위성 여부를 갈라서는 안 된다는 얘기로 읽힙니다. 그러나 우리 앞 현실은 “정의를 정의로서 얘기할 수 없는, 정의를 정의로 얘기하면 웃음거리가 되는 사회”(249쪽)이지요. 암담합니다.

“여기(한국)도 일장기는 안 되지만 영국 사람들이 유니온잭(영국 국기)을 가지고 오면 오히려 호감 가질 사람들이 많이 있죠. 하지만 그 때(일제 강점기) 배후에는 제국주의자들끼리 거래가 있었다는 겁니다.”(86쪽) 전체를 전체로 봐야 합당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라고 저는 받아들입니다만.

“프랑스에 갔을 때 베트남 요릿집을 중국 요릿집으로 잘못 알고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호치민(胡志明)을 닮은 주인이 웃으며 ‘일본 사람입니까?’ 했어요. 저는 ‘일본 사람이냐?’ 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절대 아니다. 나는 일본 사람이 아니다.’고 해 왔는데, 그 때만큼은 ‘일본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다.’ 하기가 너무 어색하고 불편했어요.”(59쪽)

“‘학살 행위에 직접 책임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있는(있었던) 국가, 그 국가에서 준 여권을 가지고 다니는 내가 이 국가가 한 행위하고 나는 상관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처벌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정부를 바꿀, 그런 정부를 비판하고 싸워서 그런 정책을 바꿔야 하는 책임이 있다. 제대로 그것을 반대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60쪽)

서경식의 이 책은 ‘국가, 국민, 고향, 죽음, 희망, 예술에 대한 서경식의 이야기’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희망’에 대한 사고는 아주 독특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이의 세계관과 바로 이어져 있는 듯합니다. 비관주의.

“희망이 ‘hope’일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희망의 희(希)자가 희박하다는 ‘희’자이지요. ‘little’, 거의 없다는 겁니다. 절망(切望)은 전혀 없다는 것이죠. 끊어버렸다는 것이 절망이고, 소망이 거의 없다는 것이 희망이에요. ‘우리의 언어에는 희망이 거의 없는 것하고 절대 없는 것, 이 두 가지밖에 없다.’”(163쪽)

그이는 끊임없이 묻습니다. 해답은 내놓지 않습니다. 아마 해답은 그이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2007년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가 주관한 연속 강좌 강의록을 가다듬어 펴낸 책이 이것입니다.

그이의 바람은 책머리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조국에 머무는 동안 여러분들에게 던진 물음은 아마도 아직 ‘소화 불량’인 채로 남겨져 있을 것이다. 그 소화가 덜 된 물음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안고 갔으면, 하고 바란다. 한국에서 만난 우리들이 주어진 답을 공유하는 ‘우리’가 아니라, 어려운 물음을 공유하는 ‘우리’로서 되풀이 만남을 이어가기 위하여.”

이 책은 현실을 진지하게 여기면서 세상을 사는 이들뿐 아니라, 지식 생각 감수성 상상력 따위를 ‘겉멋’으로 여기는 이들에게도 보탬이 될 것 같습니다. 사서 그냥 얹어만 놓아도 책꽂이가 훤해질 테니까, 말입니다. 하하.

김훤주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서경식 (철수와영희, 2009년)
상세보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글쓴이 : 김훤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미리내 2009.02.19 1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로 주문 냈습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2. 소금이 2009.02.20 04: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트남전에 대해선 꽤 많은 사과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있는데, 아닌가요. 일전에 베트남 대사관을 지내신 분의 자서전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베트남전을 이용했다고 베트남 관계자에게 이야기한 장면이 생각나네요.

    • 김훤주 2009.02.20 1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국가 차원 사과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한 번 있었는 줄 압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루뭉수리였다고 합니다. 반성 주체, 사과 대상 따위가 분명하지 못하고 그래서 어떻게 보상을 하겠다든지도 그랬답니다.

      일본 임금이나 총리 따위가 우리나라에 하는 그런 '통석의 념' 따위랑 견줄 수 있는 그런 수준이겠지요.

      그리고 민간 차원에서는 그런 사과가 많이 이뤄졌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본 사람 가운데는 저한테도 정말 잘못했다, 미안하다고 한 이도 있으니까요.

  3. 백야 2009.02.20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트남전은 자국내 두 의념의 분류가 전쟁을 이루어 지는 상황에서 두 열강중 미국의 극심한 견제로 인한 확전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외에는 한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베트남전을 이용했다는 소금이 님 말씀에는 맞다는 생각입니다만.

    침략이라고는 좀 그러합니다. 원인 제공자와 그걸 이용했다는 이유만 있었을까요?

    70년대 우리나라가 어떠한 상황이었는지

    침략전쟁 이라고 하시기엔

    제 주변 분들의 상황이나 제가 배웠던 역사적인 상황을 근거로 하기에는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보이네요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만 느낀 바가 틀리기 때문에

    • 김훤주 2009.02.20 1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크게 보면, 베트남을 프랑스가 침략했고, 프랑스가 물러나자 미국이 대신 점령했고, 여기에 민족 차원 저항이 일어났고, 대한민국은 미국의 침략 전쟁에 동맹군으로 참가했고 이렇게 되겠습니다.

  4. 장원수 2009.02.20 09: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일본은 침공이 아니라 계획되어진 침탈 아닌가요. 또한 36년이란 강점과 조선죽이기를 하지않았나요. 베트남전 하고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공산정권을 자유를 주기위하여 또한
    가고싶지않았지만 어쩔수 없이 간거고 이양반 일본 사람이네 어따데고 침공소리를 함부로 하시나요.
    이런 기사는 삭제해주세요....

    • 김훤주 2009.02.20 1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침공은 계획된 침탈이 아닌가요? 침공하면서 계획하지 않는 나라나 세력 있으면 한 번 일러주실래요?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 사람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겠지요. 프랑스로부터 지배받고 시달려 온 바를 따지자면 우리 일제 식민 지배 35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요지가, 보편 정의, 사실을 재는 기준이 일본 사람이라 해서 달라지고 한국 사람이라 해서 달라지고 중국 사람이라 해서 달라지고 하면 안 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선생님 생각부터 먼저 <삭제해 주세요.> 하하.

  5. 김성훈 2009.02.23 07: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종종 들리고있는데 댓글을 남기는건 처음인것 같습니다.
    용산 삼각지에 있는 전쟁기념관엘 봐도 마찬가지이지만 충실한 6.25전시관에 비해
    베트남전을 다루고있는 전시관은 너무 빈약했습니다.
    보수색채가 풍기는 박물관마저 베트남전에대해 서둘러 얼버무렸기에 놀라운 것이에요.
    물론 베트남전참전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해야하는한편 그로인해 현세대들이 얻게된 경제적인 풍요에
    대해서도 인지해야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답답한것이 진보진영이 가지고있는 국가유공자나 참전유공자들에 대해 가지고있는
    견해는 기본적으로 '국가에 의해 희생된 희생자'라는 것인데요. 이게 굉장히 모호합니다.
    이런 견해에 저또한 동의하지만 가정으로 민노,진신당으로 대변되는 진보진영이 집권을 하게됨으로
    이러한 사관이 주류가될경우 누가 국가를 위해 싸울까요?
    사실이 그렇기에 재향군인회나 각종 전우회등의 단체들이 한나라당의 강력한 지지층이 되는것입니다.
    베트남전 전우회같은 단체들은 한나라당이외의 정당들에 대해서 강한 혐오를 가지고 있어요.
    또한가지문제는 진보정당조차 베트남전에대해 명쾌한 해답을 못내려놓는다는 것인데요.
    사병신분으로 베트남전에 참여했던 상이군경이나 참전유공자들이 어느덧 60대 초중반이 되있는데
    10년 20년이 지나면 자연히 대부분이 세상을 떠날텐데 그때 사관을 바꿀수 있는것을 이들의 권위나
    자부심을 박탈할수있는것도 아니면서 굳이 지금 어설프게 베트남전에대해 정의내릴순없단 생각입니다.
    또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생존해있는 상황에서 베트남참전은 틀렸다는 사관을
    정립시킨다면 적어도 그사람들한테는 지독한 불명예일수 있습니다.
    그들이 죽고나서 점진적으로 진행시켜도 늦지않는다는 생각이에요.

  6. ses 2009.07.06 1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베트남 정부가 있는 이상 침공이라고 보기는 그렇지 않나요?

    나중에 기회가 되시면 영어 원문으로 된 남베트남군과 남베트남 주민 인터뷰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진정 미군을 침략자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침략 입장이라고 말씀하신 미군보다 더 지독한건 북베트남 정부입니다.

    북베트남이 남베트남 패망 후 남베트남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한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7. ses 2009.07.06 17: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족 차원 저항이라면서 테드 공세에서 후에에서만 몇천명이 넘는 민간인을 학살한게 북베트남군이고

    남베트남 패망때 수백만 남베트남 사람들을 재교육 수용소로 보내 정글 한복판에서 굶어죽거나 말라리아로 죽게 한것이 북베트남 정부입니다.

    마지막으로 파리 휴전 협정을 깨고 미군이 철수한 상태에서 남베트남을 침공하여 패망시킨것은 북베트남 정부입니다.

    그럼 북베트남 정부는 남베트남을 침공한건가요? 내전이기때문에 침공이 아니라고 하면 한국 전쟁시 북한의 남침도 침공이 아닌가요?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미국은 정식 교전 상대국이고 일본과 우리나라는 식민지와 피식지민지 관계 아닌가요?

    • 김훤주 2009.07.07 1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침략자가 잔인할 수도 있고 저항 세력이 잔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잔인한 정도를 가지고 침략이냐 아니냐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고요.
      정식 교전 상대국이고 식민-피식민이고 하는 것은 침략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는 어렵고 단지 조건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나머지는 제가 모자란 탓이겠지만 사실은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8. ses 2009.07.07 18: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트남전의 진정한 피해 당사자는 누구입니까?

    또한 남베트남 정부는 합법적이 정부가 아닌겁니까?

    제네바 회담에서 남베트남 정부는 자유진영 북베트남 정부는 공산진영에 의해 각각 인정된 합법적인 정부입니다.

    남베트남 정부가 요청과 남베트남군의 압박 마을 전투에서 참패, 당시 미국 정부에 퍼져있던 도미노 이론에 대한 두려움이 미군의 참전을 불러 일으킨거지 아무것도 없는 베트남을 먹기위해 미군이 참전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또한 정작 피해 당사자인 패망 한 남베트남 사람들의 생각은 안중도 없는체 파리 평화 회담을 깨고 미국이 없는 합법적인 남베트남 정부를 침공하여 점령한 북베트남 정부에게 사과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시 시대 상황과 역사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고 피해 당사자인 북베트남 남베트남 사람들의 의중도 모른체 누가 침략자이고 피해 당사자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베트남 여행을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남베트남 사람들은 북베트남 공산주의를 싫어합니다.

    제가 너무 주제넘은 참견이었다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