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전 친척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예식장 자리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들어오고 나서 신부가 들어왔습니다. 신랑이 먼저 들어와 있다가 신부를 맞이합니다. 친정아버지에게서 신부를 건네받아 앞으로 나아갑니다.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은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습니다만, 까먹고 있다가 문득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여자에게 주어지는(또는 주어졌던) 삼종지도(三從之道) 말입니다. 삼종지도는 여자가 따라야 할 세 가지 도리입니다. 어려서는 아버지, 결혼해서는 남편, 남편이 죽고 나서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도리이지요.

결혼식에서, 신부가, 친정아버지의 손에서 신랑의 손으로 넘겨지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삼종지도를 떠올리고 여자의 피동적인 처지를 한탄하곤 했습니다. 그래 이런 틀을 깨뜨리려는 사람들이 생겨서, 처음부터 신랑 신부가 나란히 같이 들어서는 식으로 바꿔 하는 경우를 저는 보기도 했습니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포스터.

이처럼 오랜만에 결혼식을 보면서, 아 저런 관행도 있지, 옛날 스무 해 전에도 이렇게 여겼었지, 생각하다가 엉뚱하게도 졸업식 노래로까지 생각의 불똥이 튀었습니다.

2.
아시지요? 1절입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2절이 이어지지요.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마지막, 졸업생과 재학생이 함께 부르는 3절.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물론, 같은 학교 선후배 사이 아름답다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정서도 여기에는 분명 담겨 있지만, 현실에서 좋지 않게 작용하는 정서들도 함께 있습니다.

딱 들어맞는 표현은 아닐 수 있지만, 국가주의 또는 국민주의가 하나고, 다른 하나는 학연으로 표상되는 연고주의 그리고 서열주의가 그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이리 봅니다.

그리고 시대에 뒤떨어진 구절도 틀림없이 있습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가 그렇습니다. 요즘은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하는 이가 거의 없지요, 아마.

연고주의 그리고 서열주의는 여기입니다.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입니다. 우리 사회는 학연이 아주 강한 편이기에 이런 구절 또한 그런 심리 또는 현상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할 개연성이 크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3.
국민주의 또는 국가주의는 여기 있습니다.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와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입니다. 이것들은 국가가 가치 형성의 기준이 돼 있는 구절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을 아시나요? 제가 어릴 적 이것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해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로 끝났습니다. 어릴 적 국민학교에서 이것을 달달 외우곤 했지요.

저는 그러면서 제가 진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사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한 결과(이 마저도 꼭 그렇다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만)로 아무 지향이나 의지 없이 태어났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또 있습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입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여기서 조국과 민족이 절대 가치로 돼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은 이미 한 물 간 가치가 됐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주해 온 사람을 위해서는 애를 쓰면 안 되나요? 그이들은 이민족이라 안 되는가요? 베트남은? 몽골은? 우즈베키스탄은? 캄보디아는?

조국도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조국이 인권을 보장하지 못할 때, 조국이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할 때, 조국이 복지나 사회 정의를 보장하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조국이 절대선은 이미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2007년 7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바뀌었다지요. 국가주의 내지 국민주의 냄새가 조금 가시기는 했지만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4.
졸업식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착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대다수가 ‘새 나라 새 일꾼’이 될 개연성도 없고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개연성도 없습니다.

극단으로 말씀드리자면, 이른바 국위를 선양한다는 이름난 운동선수들도, 개인개인 따지고 보면 돈이라든지 명예라든지 병역 면제라든지 하는 개인의 이득을 위해 할 뿐입니다. 그런데 어디 영리회사에 취직하고 하면서 무슨 ‘나라 일꾼’입니까?

이데올로기 공세이고 관성일 뿐입니다. 개인의 개인을 위한 행동조차 국가 차원의 일인 양 착각하게 만들려는 보이지 않는 이들의 의도가 작용한 결과입니다. 훼미리 마트에 알바 하는 친구가, 아니면 조선소 비정규직 땜장이가 ‘나라 일꾼’이라는 그런 생각을 할까요?

검사 나부랭이가 그런 생각을 한다고요? 제가 보기에는 허위의식일 뿐입니다. 결국은 자기 배 불리려는 노릇입니다. 자기만족을 위한 애씀일 뿐입니다. 공무원 나부랭이는 그런 생각을 한다고요? 멸사봉공이란 말씀? 그러면 우리 팔자가 이미 활짝 피었겠습니다.

자유로운 개인을 기초로 삼아 졸업식 노래를 다시 쓰면 좋겠습니다. ‘새 나라 새 일꾼’이나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사람’이 될 생각도 없고 그럴 개연성도 없는 아이들에게 이데올로기 공세를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노래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바로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은연중에 젖어들게 만드는 이런 이데올로기 주술은 이제 풀어줘야 되지 않겠느냐, 혼자서라도 중얼거려 봅니다. 나중에 누구든 한 사람이라도 알아들을 사람이 없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김훤주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서경식 (철수와영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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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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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리내 2009.02.20 0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정과 군사정부의 유산을 모두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이어갈 건 이어가되 철저히 민족정기를 살리는 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지난 정부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 하나는 고쳤습니다. 관련글 트랙백 합니다.

    • 김훤주 2009.02.20 1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옳으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동의합니다.

      그런데, 저 개인으로서는, 국기에 대한 경례나 맹세를 하지 않은지 꽤 됐습니다요.

  2. 뱀쥐 2009.02.21 2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요소가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은 공감이 갑니다만..

    조금 억지스럽고 꼬투리 잡기식의 글 같기도 합니다.

    그럼 기자분도..

    따지고 보면 돈이라든지 명예라든지 개인의 이득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으신지요..


    부모님이 자식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할 때에

    돈만이 벌고 행복하게 살아라..라는 말로 하기에는 아이의 꿈이나 인생이 너무 비좁지 않나요?ㅋ

    세계는 아니어도 국가정도는 되어야ㅋㅋㅋ

    그렇지만 아직 초중고등 졸업식에 후배들이 의무적으로 뒷좌석을 채워야 하고,

    졸업식 노래의 1절을 불러야 하는 등의 관행은 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김훤주 2009.02.27 13: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돈이라든지 명예라든지 하는 보기는요, 실제로 사람을 하는 목적이 국가나 민족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려고 들었을 뿐이고요.

      저는 그것이 무엇이 됐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가장 잘 사는 인생이라고 여깁니다만. 이렇게 하는 데 무슨 국가가 필요하고 세계가 필요하겠느냐, 여기는 것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