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적벽대전 2 : 최후의 결전’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스토리 전개가 빨랐습니다. 원본으로 삼은 삼국지연의를 보면 적벽대전을 두고 갖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여기서는 거의 다 생략했습니다. 허무맹랑은 줄이고 리얼리티와 긴장감은 살렸습니다.

삼국지연의에는 방통이 조조 배를 묶어 두려고 연환계를 쓰는 장면도 나오고, 주유가 제갈량을 여러 차례 죽이려고 하는 상황도 나옵니다. 영화에 나온 장간도 두 번이나 주유에게 속으며 제갈량이 마지막에 동남풍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주유가 위나라 수군 장수 채모와 장윤을 처치하는 것과, 제갈량이 조조 군사를 속여 화살을 쏘게끔 해서 화살을 장만하는 장면만 살립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것들이 제각각 떨어져 놉니다만,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단단하게 서로 엮여 있습니다. 제갈량과 주유는 제각각 맡은 일을 이루지 못하면 목을 내놓겠다고 합니다. 장간이 주유에게 속아 채모와 장윤의 거짓 항서를 가져가고, 가져간 날 제갈량이 노숙과 함께 안개 속에 배를 몰아 나갑니다.

화살을 얻는 데 성공한 제갈량과 노숙.

가운데 조조가 채모와 장윤을 논죄하는 장면.

이렇습니다. 채모와 장윤은 오나라 수군이 진짜 쳐들어오는 줄 알고 화살을 비오듯 쏟아붓게 했고, 이것은 조조로 하여금 주유랑 내통했기 때문에 저토록 차분히 살펴보지도 않고 화살을 쏘아 갖다 바치다시피 했으리라 짐작하게 만듭니다. 곧바로 후회하지만 목은 이미 떨어졌습니다.

2.
동남풍 장면, 그러니까 불로 공격하는 시점은 어떻게 처리할까에도 저는 관심이 쏠렸습니다. 삼국지연의처럼 황당무계해지기 쉽고 아니면 조조를 바람이 바뀌는 시점도 모르는 멍청한 인물로 그려 리얼리티가 떨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소교의 등장은 뜻밖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보였습니다.

소교가 조조 진영으로 혈혈단신 건너가는 것은 사실 무리한 설정입니다만, 영화 전편에서 소교를 반전 평화의 화신처럼 만들어놓았기에 한편으로는 설득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군사를 물리시라 권하고, 그리 안 되면 공격하는 타이밍이라도 빼앗아 보겠다…….

조조 앞에서 스스로 목을 베겠다고 칼을 빼드는 소교.

어쨌든, 이보다 더 좋은 설정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소교가 조조 진영에 투입됨으로써 영화에서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주유가 군사를 몰아 화공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끝이 났어야 했겠지요. 그리 안 하면 맥빠진 장면 전개가 되겠지요.

마지막, 조조와 주유와 조자룡 따위가 서로 칼을 들고 상대방 목에 겨누고 한 설정은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어 보였습니다. 아마 제작진도 유치하다 여기지 않았을까 모르겠습니다만, 적벽대전의 주인공들끼리 얘기를 나누게 하려고 그리 했겠다는 짐작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보러 간 우리 아들도 재미있게 잘 봤다면서도 안 좋은 점 몇몇을 꼽았습니다. 저도 동의했습니다. 손권의 동생 손상향이 적정 탐색을 위해 조조 군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손숙재라는 사람을 만나 친해집니다. 나중에 손상향은 돌아오고 한창 전투 중에 손숙재와 만납니다.

손상향이 아는 체를 하고 손숙재는 그냥 반가워 뛰어옵니다. 손상향 뒤에서 화살이 쏟아지고, 이를 맞은 손숙재는 웃으며 숨을 거둡니다. 손상향은 물론 화살 한 대 맞지 않지요. 어색합니다. 아들은 “짜증이 났어요.” 이랬습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주유와 아내 소교가 제갈량을 떠나보냅니다. 제갈량 손에는 망아지 고삐가 쥐어 있습니다. 전편에서, 제갈량이 받아냈던 망아지입니다. 그러면서 ‘이 망아지만큼은 전쟁에 쓰이지 않도록 해 주시라.’ 취지로 말합니다.

제갈량과 주유와 소교의 인간적 풍모와 전쟁을 싫어하는 심정을 보여준다는 평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앞서 나온 장면들로도 그런 심정은 충분히 보여졌다는 생각으로 보면, 괜한 손찌검 또는 덧칠한 마무리 같이 보입니다. 아들은 “싸구려 같아 보였어요.”, 이랬습니다.

김훤주

삼국지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장정일 (김영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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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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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별로 2009.02.23 0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영화보고 적지않이 실망했어요...삼국지 자체가 사실에 기초한 허구가 대부분이라 여러가지 해석을 할순있죠..그러나 소설보다도 못한 장면이 위에 지적한 부분 외 동남풍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듭니다. 사실 적벽전쟁의 주연은 공명이 아니라 주유라는건 대부분 삼국지매니아라면 알고있을테고 중요한건 공명의 쇼(show)입니다. 자신이 바람조차 마음대로 부릴수 있는것처럼 재단을 쌓아놓고 만인에게 보여준 쇼는 바람의 방향은 이 시기에 한번쯤 변한다...라는걸 예측할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 민초들을 향한 일종의 퍼포먼스죠. 이건 무섭습니다. 정보력이 부족한 민초들에게 이런 쇼는 자칫 공명을 신격화 할수도 있고 이런 사태의 심각함이 주유로 하여금 공명을 죽여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만드는 사건인것처럼 부각을 했다면 더욱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삼국지가 시대를 뛰어넘어 위대한 이유가 이처럼 소설속의 허무맹랑한 에피소드라도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고 추측하면 모두 말이 되죠. 대단한 소설입니다.

    • 이름이름 2009.02.23 1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옛 이야기는 그 시대의 시각으로 봐야 합니다. 오늘의 시각으로 보게되면, 모두 허무맹랑하고, 꼴스러워 보일 뿐이지요. 제단 쌓는 것 흔한 일인 시대였지요.

    • 김훤주 2009.02.23 1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어요. 저는 주로, 재해석을 어떻게 할까, 어떻게 삼국지연의를 현대화해낼까 이런 관점에서 이 영화를 봤답니다.

  2. 머미 2009.02.23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보기에는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허무맹랑하던데... 사람마다 보는 눈은 참 제각각인듯 합니다.

    그리고 조조는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편에 그렇게 바보로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지때에는 원래 일양(一陽)이 살아나는 법'이라며 동지때 동남풍이 이는 기상현상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 대목은 제갈양이 초능력을 이용해 바람을 불게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죠. 제갈양이 주유의 진영에서 멀리 떨어져 제단을 차린 것이 사실은 주유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포석이라는 걸 삼국지를 주의깊게 보신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트랙백 남기겠습니다.

    • 이름이름 2009.02.23 1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작을 이기는 영화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우리다 가 글을 읽을 때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하지요.
      글을 앍고 상상력이 동원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영화제작은 현실이 개입이 되지요. 한계라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 한계를 많이 극복해 낸 감독이 박수를 받는 거구요.

    • 김훤주 2009.02.23 1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런 점은 있습니다. 조조는 당시 원씨 집안과 중원을 놓고 겨룬 관도대전에서 크게 이긴 뒤끝입니다.

      그런 조조에게 유비나 손권은 변두리를 떠도는, 또는 변두리에 머무는 잡것들로밖에 여겨지지 않습니다.

      상대를 크게 얕잡아보고 자기를 아주 대단하다고 여기는 자만에 빠져 있었음은 분명하지 않을까요?

  3. 이름이름 2009.02.23 1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주훤 님!
    님의 글을 가끔씩 들어와서 보게 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을 어쩌겠습니까만은...
    지나치면 부족함만도 못하다는 말이 이있지요.

    "워낭소리"의 영화의 평에서도 그러시더니 여기서도 그러는군요.

    남자아이가 중국무협영화?를 보면 당연히 재미있어하지요.
    판단력이나 평가력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는 남자학생이
    다큐멘터리 영화인 "워낭소리"를 보면 당연히 재미 없어하지요.

    아이의 평은 아이의 수준에 맞는 평으로 아버지로서 그저 대견해 하시는 것으로 안되는지요.
    내 아이가 "재미있었다."하면 대단한 영화이고,
    내 아이가 "뭐 이래."하면 하찮은 것으로 결론 지어버리는 모습이
    제 소견으로는 자식이 이뻐서 죽겠는 것으로 비쳐집니다.

    아이의 의사가 하찮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아이보다 못한 어른?도 많고, 정말 대단해 보이는 아이들을 보고 놀라기도 하니까요.

    제가 직접 "워낭소리"를 보지는 못하였지만 영화에서 감독이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은,
    흥미위주의 영화가 아닌 다큐로서 소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판단 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소의 이야기가 아니지요?
    그러다보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오신 할머니가 자연스럽게 등장이 되었겠지요.
    그리고 그 분들이 수십년을 지내오신 관습이나 오늘의 시각으로는 인정이 안되는
    남녀불평등의 일상이 그대로 보여졌을 것이고요.

    그런데 여기서...
    "아이구 눈에 넣어두 안 아플 내새끼 ..."라는 "대접(대우)를 받으면서 자라 온 아이가
    무엇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의 눈에는 못된 할아버지로 비쳐질 밖에요.
    그런데 님마저 "그래 못된 할아버지다." "불평등..."운운 하시니, 한편 답답해 집니다.

    다시 제 소견으로는,
    님의 연륜에 의한 평이 아닌, 자식이 이뻐죽는 부모로 비쳐집니다.
    글을 쓰신다면, 지나온 시간을 제대로 읽어야지않나 합니다.
    그 시대에는 그게 당연했습니다.
    당연히 아내는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남편은 앞장서서 뒷짐지고 걸어갔습니다.
    물론 그게 잘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시대를 살아오셨고, 여전히 그시대 안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시간 안"에 존재한다는 거지요. "오늘"이 아니고.
    당연히 아이는 이해 못하지요. 그게 오늘 입니다.
    아이의 잘못이 아닙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 그리고 아버지가 어렸을 때는 저런 모습으로 살았단다. 그 것을 지금 고치고 있는 중이고...."라고요.
    아이가 할아버지를 탓하게 해서는 안되었던 거라는 이야기 입니다.

    한가지 더요.
    옛이야기 중에 "팔려가는 나귀?"뭐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나이많은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요.
    아버지는 아들 생각해서 아들을 타고가게 하지요. 그랬더니 지나가는 사람이 한마디하지요.
    못된 놈이라고요. 그래서 아버지가 타고가니, 또 한마디 듣지요.
    그래서 둘이 타고 가지요. 그랬더니 이제는 나귀가 불쌍하다고 한마디 하지요.
    그랬더니 나귀의 다리를 묶어서 둘러매고 갔던가요?
    어쨋든 그런 이야기가 있지요.

    그래요.
    늙은 소. 안타깝고 불쌍합니다.
    그러면 아픈 할아버지 걸어서 병원갈까요?
    팔려가는 소니까 코뚜레 빼고 편히 보내줘야 했어야 했나요?

    그저 그 시대에 살아왔던, 그리고 여전히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소" 입니다.

    이렇다 저렇다 평가 해야할 대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보면 되는 다큐 아닙니까?
    그저 누구도 완벽할 수 없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영화감독이
    "역사같은 소설이자 소설같은 역사의 한 대목, 그 옛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을 뿐 아닐까요?


    그런 이야기에
    "내 아들도 그러더라."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내는 모습은 뭔지요.

    "이런 부분이 아쉽다."라고 말은 할 수 있겠지만,
    "이게 뭐냐."라고는 말 하면 않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 보다 더 형편 없을테니까요.


    그리고 김 주원님께도 감히 한 말씀 드리자면.
    "우리집"이라는 영화?의 어디에서 남존여비의 모습이 보이시는지요?
    제가 본 바로는,
    할머니의 손자에 대한 사랑과
    철없던 아이가 할머니와 지내면서 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정을 알게되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만....
    눈물나게하는... 그런 우리의 모습 아니었나요?

    제가 보지 못한 "남성우월"의 모습이 어느 대목이었는지 말씀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만...

    두분의 현실을 바라보는 모습은
    저도 충분히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만,
    영화를 보고 평하는 수준은 공감이 되질 않는군요.

    저의 두분께서 하신 영화 평에 대한 소견 이었습니다.

    • 이름이름 2009.02.23 1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죄송합니다.
      제가 두분 성함에 실수를 했습니다.
      수정하려고 했는데, 비밀번호를 모르겠군요.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 김훤주 2009.02.23 11: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미안해 하실 필요 없습니다요. 늘 있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일부러 그리 하신 것도 아니고요. ^.^

    • 김훤주 2009.02.23 1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식이 이뻐서 죽는"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저는 나름대로 아들이나 딸에 대해 긴장된 눈길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들은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있고, 그 근거에 대해 제가 동의하는 것입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섣불리 일반화하시는 일은 하시지 않으면 좋겠다는 말씀인데요. 저희 아들은, 무협 영화라든가, 액션 영화 쪽으로는 전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재미있다거나 재미없다고 여기는 친구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워낭 소리' 관련해서는, 여기서는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훤주 2009.02.23 1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주원(? ^.^) 대신 드리는 대답은 아닙니다만, 말씀하신 영화 '우리집'은 '집으로'가 아닌가요?

    • 김주완 2009.02.23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화 <집으로>도 그런 입장에서 볼 수 있다는 거죠.
      할머니(여성)의 무조건적인 손자(남성) 사랑, 그 할머니(여성)를 가학적으로 괴롭히는 손자(남성)....
      만일 할머니와 손자가 아니라 손녀의 관계였다면, 그 영화가 감동을 주거나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또 할아버지와 손자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