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제가 일하는 경남도민일보에 ‘인권’이라는 잡지가 배달돼 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모양입니다. 2009년 1·2월호입니다.

호기심이 일어서 뒤적거려 봤습니다. 가운데 즈음에서 “축구시합 졌다고 전학 가야 합니까?”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습니다.

읽어봤더니, 강원도 한 고교에서 억지로 선수단을 꾸려 축구 경기를 하게 하고 나흘 뒤에는 축구부를 해체한다며 전학을 강요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만, 뭐 어찌 보면 별로 놀랄 일도 아닙니다. 요즘 학교가 어디 학교라야 말이지요. 평균 점수 떨어진다고 운동선수는 시험도 못 치게 하는 세상이니까요.

행여나 싶어 국가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도자료를 뒤졌습니다. 지난해 12월 22일 낸 “부당한 전학 강요는 인권 침해”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격월간 '인권' 2009년 1·2월호 32쪽.

2008년 12월 22일치 국가인권위 보도자료.

이번에는 인터넷을 통해 얼마나 보도됐는지를 알아봤습니다. 서울 신문들은 거의 하지 않았더군요. 해당 지역인 강원도에서도 한 신문만 다뤘고요.

신문 보도와 인권위 자료들을 바탕 삼아 사건을 재구성해 봤습니다. 청소년을 교육한다는 고등학교에서, 어른들이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이런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중학교 졸업 예정인 축구 선수 기역 군은 2007년 11월 강원도 ○○시 기역 고교로 스카우트됐습니다. 기역 군은 입학하기 전부터 기역 고교 축구부에서 운동을 했습니다.

○○시에는 기역 고교만큼 전통이 오랜 지읒 고교가 있습니다. 맞수인 두 학교는 지역 주민의 사랑 속에 해마다 단오에 축구 정기전을 치러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역 고교 감독이 같은 해 같은 달 선수 39명 가운데 28명을 데리고 경기도 한 고등학교로 집단 전학을 가버렸습니다. 남은 선수는 고3 9명과 고1·고2 1명씩뿐이었습니다.

신문 보도는 이렇게 났는데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에는 기역 고교 진학 예정자 3명을 제외한 모든 선수가 축구부에서 나갔다고 다르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당시 예비 고1이던 기역 군도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습니다. 집단 전학의 배경에는 해마다 열리는 두 학교 축구 정기전 수익금 배분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정이 어려운 학교 대신 축구부를 지원해 온 총동문회에 대해, 축구 감독이 정기전 등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에 견줘 지원금이 적다고 맞서는 등 마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현역이 둘뿐인 상황에서 기역 고교는 신입생 8명과 강원도와 다른 지역 출신 고교생 16명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2008년 6월 정기전을 치렀으나 결과는 3-0 패배였습니다.

그러자 나흘 뒤 학교는 선수들에게 축구부를 해체한다면서 다른 데로 전학하라 강요했으며 7월 15일에는 숙소마저 폐쇄했습니다. 이에 따라 14명이 전학 갔고 2명은 운동을 그만뒀습니다.

이를 두고 보호자들은 정기전을 치르면 출전지원금과 입장료 수익 등이 생기기 때문에 아이들을 일회용 선수로 악용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답니다. 교육이 아닌 장사 차원이라는 얘기지요.

그럴만도 한 것이,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선수까지 억지로 데려와 시합에 나가게 했을 뿐 아니라 정기전을 겨우 열흘 앞둔 시점에 전학 오게 한 선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는 “내년 신입생을 많이 뽑을 텐데, 경쟁에서 이겨낼 자신이 있거나 아니면 끝까지 기역 고교 축구 선수로 남을 사람은 남아 있고 다른 학교 전학을 바란다면 도와주겠다.”고 했을 뿐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선수들은 감독 의지가 아닌 총동문회 차원에서 보강이 됐기 때문에 감독 스타일로 리빌딩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했답니다. 강제라는 얘기인지 아닌지 아리송합니다.

인권위 조사 결과는 다릅니다. “숙소를 폐쇄하면서 실력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전학을 강요했고 계속 남아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보호자와 학생 선수들이 진술했다.”는 것입니다.

인권위 판단은 이렇습니다. “교육기본법 제12조에 규정된 학습자의 인격과 개성 존중을 하지 않았고, 헌법 제10조에 있는 행복추구권과 자기운명결정권을 침해했다.”

사건을 진정한 기역 군의 아버지는 이리 말했습니다. “아들과 어린 학생들이 받은 정신적 상처(정신의학 용어로  트라우마Trauma라 한다지요.)와 충격을 생각하니 너무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아버지는 또 ‘뛰고 싶었던 학교에서 등 떠밀려 내쳐진 아들의 상처가 못내 속상하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가 아직도 기역 고교 유니폼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어요.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들에게 진짜 해서는 안 되는 해코지를 한 축구 감독과 교장은 무슨 처벌을 받았을까요? 인권위는 강원도 교육감에게 ‘경고 조치’와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권고’만 했을 뿐입니다.

교육감이 그 경고라도 했는지 여부는 제가 모릅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이런 면에서 보면 참 잔인합니다. 어떤지요, 그렇지 않은가요?

김훤주

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하워드 진 (궁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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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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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사의 문화마을 2009.02.25 03: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성격상 모두 실명으로 쓰게 될 거 같아 쓰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제법 축구 명문으로 알려진 학교들이지요.
    세상이 어떻게 될라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제 친구 하나도 자식을 축구를 시켰습니다.
    그 친구는 자식이 졸업을 할 때까지 늘 학교와 경기가 있는 전국을 자식과 함께 다녀야 하더군요.
    심지어 축구부의 코치에게 밉보일까 여간 조심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게 한국의 중고등부 축구부의 실상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부모까지 고생을 시켜놓고도 아주 특별한 능력의 선수가 아니면 대학이나 프로로 갈 수 있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요?
    기막힌 현실입니다.

    • 김훤주 2009.02.25 0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그러셨군요. 저도 만약 그 지역에 살고 있다면 실명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연고와 패거리로 똘똘 뭉쳐진(그리고 같은 까닭으로 쫙쫙 갈라진) 그 지역 사회가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그런 사이에서 어린 학생과 선수들이 악용되는 것이고요, 그러면서 겪지 않아야 할, 감당하기 어려운 괴로움을 당하는 아이들입니다. 저라도 그런 일을 치르고 나면 성격까지 이상해질 것 같습니다.

  2. 뉴클리어 2009.02.25 0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가 찰 일입니다. 기사가 좀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비슷한 일들은 주위에 흔하지요.
    그나마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클럽축구가 활성화 되고 있습니다만.........에혀~

    큰 애가 유소년축구클럽 선수인데 남 일 같지 않네요.

    • 김훤주 2009.02.25 1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어릴 적 운동 선수 노릇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 때랑 견줘 지금 이 사례가 훨씬 더한 것 같아요. ㅜㅜ
      참 큰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