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 강유원 박사에게 '책이 왜 희망인가'를 묻다

강유원은 헤겔의 사회역사철학을 전공한 철학박사다. 인터넷 교보문고나 알라딘에서 이름을 검색하면 무려 30여 권에 이르는 저술과 번역서들이 나온다. 철학과 관련된 인문학 서적이 많지만, '책'에 대한 책도 상당수에 이른다. <책과 세계>(살림, 2005), <몸으로 하는 공부>(여름언덕, 2005), <강유원 서평집 : 주제>(뿌리와이파리, 2005), <책>(야간비행, 2003) 등이 그것이다.

그는 <미디어오늘>과 <시네21> 등 많은 매체에 서평을 썼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독서클럽을 운영하기도 한다. 가히 '책'과 '서평'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 할만 하다.

그런 그가 <경남도민일보> 매주 금요일자 1면에 '책은 희망이다'라는 고정란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자진하여 서평을 보내왔다. 지난 27일자에 실렸던 <국경없는 조폭 맥파이아>에 대한 책소개 글이 그것이다.

경남도민일보 2월 27일자(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아울러 그는 '책이 희망'인 것은 맞는데 성장율 0% 시대에 왜 책읽기가 희망인지, 희망인 건 알았는데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등을 알려주는 일종의 기획기사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충고를 해왔다.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인문학자이자 서평가이며, 책 전문가인 그를 인터뷰하면 곧 '기획기사'가 될테니 말이다. 과연 그는 이메일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줬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책은 당연히 희망이며, 책을 읽음으로서 사람들의 삶의 질 자체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장률 0% 시대일수록 성장에 대한 환상을 확고하게 버려야 희망이 생긴다"며, 녹색평론에서 나온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는 또한 "지역신문이 지역의 도서관을 취재하여 도서관이 주민들의 삶의 질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보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강유원 박사가 쓰거나 번역한 책들 중 일부.


-철학자로서 서평 작업을 그렇게 많이 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리고 선생님에게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책읽고 서평쓰기는 모든 공부의 출발점입니다. 사실 이런 책이 좋다, 저런 책이 좋다는 말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곧바로 그 책을 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자해도 마땅한 안내가 없고 자신에게 적합한 책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여 무조건 베스트셀러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몇 만명의 사람들이 똑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좀 엽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홍성대의 <수학의 정석>으로 수학을 공부하듯이 한국 사람들은 책도 다른 사람이 안읽는 것을 읽고 있으면 불안해서 다 맞추나 봅니다. 어쨌든 책으로 가는 일종의 안내를 마련하는 것은 한 글자라도 좀 더 배웠다는 사람이 해야할 일인듯하여 서평을 쓰고 있습니다.

인문학자, 서평가 강유원. @강유원


-그동안 적지 않은 책을 직접 쓰시거나 번역하시기도 했는데, 스스로 대표작(또는 만족스러운 책)을 꼽는다면 어떤 책이며, 그 이유는 뭡니까?

△<책과 세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책과 세계>는 200자 원고지 300매 분량의 얇은 문고판 책인데, 딱 그만큼의 분량 안에 압축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집어넣었다는 묘미가 있습니다. 책에 관한 제 생각을 적으면서 그 안에 제 세계관을 은근히 집어넣기도 했으며 제가 즐겨하는 수사법 등을 촘촘하게 시도해 보았기 때문에 가끔 들춰보면서 히죽거리기도 합니다. 또 이 책을 통해서 제가 가진 한계를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나는 두꺼운 책을 못쓰겠구나'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두꺼운 책은 읽기는 하겠는데 쓰자면 제 능력을 넘어가는 것이기에 틀림없이 괴로울 것입니다. 이런 한계를 알려준다는 점에서는 과욕을 부리지 않게 해주는 좋은 경계(警戒)이기도 합니다. 번역한 책들은 그저 우리말로 옮기기만 했으니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스스로의 평가와 관계없이 많이 팔린 책들은 뭔지 좀 여쭤봐도 될까요?

△<책과 세계>가 많이 팔렸을 것입니다. '많이 팔렸다'고 하면 인세수입이 어마어마할 것이라고들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3, 4년 동안 만 원짜리 책 4000권 팔리면 받게 되는 인세가 400만 원이니까요. 그래도 4000권이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집에 책이 그만큼 있으면 집이 꽉차지 않습니까.

-선생님에게 책을 쓴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학자들은 '학술서'를 씁니다. 저도 가끔은 학자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 아직은 그런 자각이 별로 없습니다. 저는 '학습서'를 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몽롱하고 현학적인 책보다는 보통 사람이 읽어서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명쾌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쓰거나 번역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평집은 책에 대한 안내를 목적으로 하고, 번역본들은 필요한 책들인 듯하여 번역하고 있고, 서구 고전 안내서 역시 어려운 책들을 읽는데 도움이 될 듯하여 쓰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가 쓰거나 번역하는 책들을 '학습서'라 한다면 결국 이 책들은 독자들이 자신의 방향을 찾아 나아가기만 한다면 곧바로 사라져도 무방한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쓴 학습서들이 더이상 필요치 않게 되는 때가 빨리 오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강유원 박사. @강유원


-경남도민일보 '책은 희망이다'에 자진하여 원고료도 없이 서평을 써주셨는데, '프로'이신 선생님이 그래도 되나요?


△'프로'는 돈에 철저해야 합니다. 이는 악착같다는 뜻이 아니라 돈에 관한 한 맺고 끊는게 분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프로입니다. 제 글 하나를 읽고 독자가 어떤 책이든 한 권 사서 읽으면 저는 만족합니다. 독자의 저변이 넓혀지는 것, 이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과연 책이 희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책은 당연히 희망입니다. 물론 책 한 권이 희망일 수는 없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빨리 빨리'를 통한 성과 위주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삶의 여유가 생기고 그것은 마음의 풍요를 가져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처럼 책을 읽는 일을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질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책 그 자체가 희망인 것이 아니라 책을 읽어야 희망이 생겨납니다.

강유원 박사. @강유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이 어려운 시기, 성장률 0%인 시대에 왜 책읽기가 희망일까요? 그리고 이런 시대에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성장율 0%의 시대는 우리 삶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와 있는 성장 이데올로기를 억지로라도 버려야 할 시대가 왔음을 알려줍니다. 만날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는 것이 사람살이의 본 모습은 아닙니다. 그냥 제자리에 서서, 또는 뒤돌아서 가보기도 하고 옆도 살펴보는 것이 참모습일 것입니다. 책을 읽어야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때 책을 읽어서 성장에 대한 환상을 확고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희망이 생깁니다. 녹색평론에서 나온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을 권합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성장'에 목매고 살아온 지는 300년이 되지 않습니다.

-좋은 책읽기 방법은 뭘까요? 또한 독자의 처지에 따른 독서방법은 어떻게 달라야 할까요?

△대부분의 책은 한번 읽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좌절하지 않고 여러번 읽는 것이 가장 좋은 책읽기 방법입니다. 과학자 뉴턴은 책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부딪히면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많이 읽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좋은 책을 여러번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독자의 처지에 관계없이 중요합니다.

-독서의 성과는 어떻게 축적하고 나누는 게 좋을까요? 블로그를 활용한 온라인 독서클럽의 가능성은 어떻게 열어갈 수 있을까요?

△책을 읽고 자신의 블로그에 독후감이나 서평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유념할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낌'만을 적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느낌은 사실 '정보'가 아닙니다. 블로그를 일기장으로 이용한다면 무방하겠지만 책을 읽은 다음에 떠오르는 막연한 느낌만으로는 블로그를 알차게 만들 수 없습니다. 몇몇이 모여서 일종의 팀블로그를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것이 온라인 독서클럽으로 발전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일은 지역도서관을 근거지로 삼아서 진행되어도 좋을 것입니다. 지역신문은 지역의 도서관을 취재하여 도서관이 주민들의 삶의 질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보도하는 방식으로 측면 지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지방정부는 다리짓고 도로 넓히는 정부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동대문구 정보화도서관( http://www.l4d.or.kr )을 하나의 모범 사례로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 도서관 때문에 그 동네로 이사오는 사람이 생겨날 수 있어야 합니다.

-allestelle.net이라는 인문학 사이트를 운영하고 계신데, 어떤 사이트인가요?

△좋은 책을 골라서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정보를, 인문학의 기초에 관심있는 이들에게는 지식을 주고자하는 일종의 학습사이트입니다. 제가 강의한 내용들을 들을 수 있는 녹음파일, 서평, 번역하거나 쓴 책의 초고 등이 업로드되어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이트들이 좀 더 많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강유원 박사. @강유원


-경남도민일보와 같은 지역신문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지역신문 기자, 또는 그냥 기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좀 해주세요.


△지역신문은 말 그대로 지역의 현안을 심층적으로 다루는 매체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지역신문이 없다면 특정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됩니다. 한국은 중앙집중의 전통이 높아서인지 지역신문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지역 자체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좋은 의미에서의 지역감정과 자부심은 앞으로 더 고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역도서관 운동, 지역농축산물(로컬푸드)운동 등은 지역신문만이 다룰 수 있는 이슈들인데 이것들이 바로 우리의 삶의 질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역신문 기자들은 이런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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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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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르다보면 2009.03.02 16: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배공감..
    실제 도서관 때문에 이사오는 분들 있습니다.
    이사가시면서도 그곳에도 있어요 물어보시는 분도 계시고..
    없으면 만드는 분들도 있습니다.

  2. 도아 2009.03.02 17: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을 찍은 각도가 달라서 인지 한분인데도 서로 다른 분위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만나뵙게 되서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술을 조금 더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더군요.

    • 김주완 2009.03.02 19: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찍은 사진이 아닙니다. 제공받은 사진인데...분위기가 독특합니다.

      그날 저도 아쉬웠습니다. 또 뵈올 수 있는 날이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