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하는 일본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런 일본 사람을 볼 때마다, 한편으로는 고마우면서도(이 또한 아마 민족주의 비슷한 감정이겠지요.) 한편으로는 소름이 돋을 만큼 섬뜩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이들의 철저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이라는 책, 그 책머리에 붙은 글쓴이 가노 마사나오라는 일본사람의 한국어판 서문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에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어릴 적 조선인 동급생이 당했던 기억입니다. 그 기억이 자기 인생을 결정했다는 고백입니다.

1. 대일본제국 국민학생의 창씨개명 기억

<<우연히도(내 의지와는 상관없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의미에서) 1931년에 ‘대일본제국’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 때 소학교(당시 명칭으로는 국민학교) 시절에 겪은 사건을 잊을 수 없습니다.

딱 한 사람 있던 재일 조선인 동급생에게 담임 교사가 별안간 “이 교실에서 너를 일본인으로 만들어 주겠어”라고 선언하고는 ‘오야마 하지메’(大山一)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가장 간단한 글자이니까 너 같은 조선인도 쓸 수 있을 거야” 하고 내뱉었습니다.

나중에 이것이 창씨개명의 학교판이었다는 것을 알았는데, 아무리 ‘소국민’이었다고 해도 어린 마음에 가혹한 처사로 여겨졌습니다. 그 뒤로 ‘오야마 하지메’라는 이름은 내 기억 속에 새겨진 채 조선 문제를 생각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일본 근현대사 전공자로서 인생을 선택하게 되었고, 일본의 근대가 조선과 조선 사람에게 어떠한 것이었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망각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사실 그 이상으로 일이 생길 때마다 ‘오야마 하지메’가 달려들어 내 마음을 뒤흔들곤 했습니다.>> (‘사실 그 이상으로 일이 생길 때마다’는, 번역이 좀 이상합니다만.)

2. 피해자 처지에 서기가 쉬운 일일까

이것은 무엇일까요? 당시 교실에서 조선인 동급생은 피해자입니다. 일본인 교사는 가해자이겠지요. 그렇다면 가노는 무엇이었겠습니까? 방관자쯤 되겠지요만, 가해자에 가까운 방관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방관자 또는 가해자가, 처지와 관점을 바꿔 피해자에게로 돌아와 선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 세상 사는 이치에서 보자면, 편하게 지내고 싶다는 본능을 거슬러 불이익을 스스로 골라잡는 그런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하면서 지내왔는가? 이런 반성이 자꾸 됩니다. 이를테면 제가 어린 학생이 됩니다. 초등학교 시절 교실로 돌아갑니다. 베트남이나 중국이나 몽골이나에서 옮겨온 여성이 어머니인, 이른바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학급 동료가 됐습니다.

그런데 담임 선생이 베트남 말이나 중국 말이나 몽골 말 따위를 못 쓰게 하고 ‘우리’ 한국 말만 쓰게 하는 상황이면 나는 어떻게 할까? 그이들 처지에서는 한국 말뿐 아니라, 베트남 말이나 중국 말이나 몽골 말도 마찬가지 모국어인데 말입니다. 피해자 옆으로 쉽사리 옮겨가질지, 아니면 담임이랑 같이 손가락질을 해댈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3. 관동대학살 경험으로 이름을 코리안으로 바꾼 일본사람

이런 얘기도 적혀 있습니다. 같은 가노 마사나오가 일러줬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참혹했던 광기가 배경입니다. 당시 조선인 학살이 공공연하게 벌어졌지요. 아니, 일본 사람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조선인이든 아니든 그대로 죽어나자빠져야 하는 상황이었답니다.

<<또 센다 고레야(千田是也)라는 연극인이 있습니다. 본명은 이토 구니오(伊藤?夫)라 하는데, 와세다대학 독문과 학생이던 1923년, 관동대지진의 와중에 도쿄 센다가야(千田ケ谷)에서 조선인으로 오해 받아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 경험을 마음에 새기고자 작심한 이토구니오는 센다가야의 코리안 즉 센다 고레야를 예명으로 정했습니다. 그런 삶이 나를 매료시켰습니다.>>

좀더 찾아봤습니다. 센다 고레야는 실존 인물이었습니다. 그이는 그냥 길거리에 나갔다가 조선인으로 오인됩니다. ‘조선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는 자경단의 추궁을 받습니다.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한, 이미 이치에 합당하게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자경단이라는 집단이 인정할 만한 증거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절망스러운 분위기에서, 자경단은 일본 사람이 아니면 소리내기 어려운 발음을 해보라고 강요합니다. 그런데 센다 고레야를 살리는 손길은 엉뚱한 데서 뻗어나왔습니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일본사람임이 확실한)이 센다를 보고 “야, 너 뭐하냐?” 이렇게 말을 걸고 일본 사람이라 증명해 줬던 것입니다.

이렇게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 자기가 죽을 고비로 몰린 원인을 제공한, 조선과 조선인 편에 서서 생각하고 행동하기란 그야말로 어려운 노릇입니다. 물론 정확하게 따지면 자기를 죽을 고비로 몰고 간 것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 광기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 일본 사람은 그렇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이름까지 갈아치워 버렸습니다.

4. 읽어볼만하겠다 싶은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

가노 마사나오가 쓴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에는 50명이 들어 있습니다. 가해자 편에 서서 충분히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도 굳이 피해자 편에 선 사람이 쓴 책이라 믿음직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긴장을 늦출 필요는 없겠지요.

아직 다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틈나는대로 읽어볼 요량입니다. 얼핏 보기에 이런 인물도 있더군요. 지식이나 일본 역사나 사회 흐름 따위뿐 아니라, 읽으면 사람에 따라서는 재미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230~231쪽입니다. 야나기타 구니오(1875~1962년)를 다룬 부분입니다. 민속한 분야를 개척해 민속학의 체계화와 연구자 육성에 이바지했다고 합니다.

<<야나기타는 <메이지·다이쇼의 역사 4, 세상편(明治大正史 4, 世上編, 1931년)에서 그런 생각을 구체화시켰다.

“이전의 전기(傳記)식 역사에 불만이 있어 일부러 고유명사를 하나도 쓰지 않으려 했다”는 결의에 따라 “영웅의 심사를 적지 않고,” “세상에 널려 있는 보통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 작품은 사람들의 눈과 귀, 코의 기능, 즉 색·소리·냄새에 대응하는 인간의 힘이 근대화와 더불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상세하게 밝힘으로써 과거를 보는 우리의 사고방식에 충격을 주었다.

예를 들면 주거 환경이 판자문에서 장지문으로, 그리고 유리문으로 바뀌는 것이 가져온 변화를, 집안 구석구석이 밝아졌다는 점에 포착하여, “집안의 젊은이들이 일이 없는 시각에 물러나서 책을 읽는 것이 바로 그 구석이었다. 그들은 조금씩 가장(家長)도 모르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생각하게 되면서 마음속의 방들도 또한 작게 나뉘어졌다”고 설명한다.

방마다 전등을 켜고 끌 수 있게 되자 “불의 분열”이 일어났는데, “불의 분열은 곧 이로리(爐, 전통 가옥의 거실에서 취사와 난방을 위해 피우는 화로-옮긴이)의 위력이 쇠락한 것을 말해 준다”며, 그것이 이로리를 둘러싸고 정해졌던 가족 구성원의 위치 변화로 이어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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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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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ason yang 2009.03.14 1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저도 대학다닐때 근현대사를 집중 수강했을때는, 국가적인 관점에서만 공부했지, 이러한 방향에서 바라본 역사는 생각 못했는데, 참으로 흥미롭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날아올라 2009.03.14 2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타민족에 대한 일본 시민사회의 범죄성을 밝히는 책을 쓰려고 마음 먹고 있는 사람입니다. 왜곡이란 거짓을 꾸며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사실을 감추고 은폐하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일본인들은 협의의 왜곡만을 강조하여 자신들의 추악한 일면을 외면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까발리고 폭로해서 스스로 자결하고 싶도록 만드는 원동력은 오로지 사실에 근거한 진실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비열하고 더러운 종족이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감정적인 분노를 떨쳐버리고 객관적으로 한일관계를 보고 싶습니다. 저는 일본인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한번쯤 읽어보고 싶네요.

    • 김훤주 2009.03.14 2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뜻깊은 작업을 하시는 중이네요. 그리고 조금 걱정되기는 합니다. 제가 일본사람을 많이 알지는 못하는데, 그래도 제가 아는 이들 가운데는, '비열하고 더러운' 그런 이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요. 일본 사회 비주류들이라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냥,,, 한 번 드려 보는 말씀입니당.

    • 홍정표 2009.03.15 0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최근 느끼는 바로는 일본국민들의 성정이 아쉽게도 우리나라보다 나은 것이 아닌가 싶네요. 경제적풍유탓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는 너무 전체주의적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과거 제국주의일본의 모습을 보는것 같습니다.

    • 지나가다 2009.03.15 07: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홍정표님은 daum 지저분한 댓글만 읽으셨나 과거 제국주의 일본을 우리나라와 비교하다니 참 어이없습니다..제국주의 라는 의미를 아시고나 하시는 말씀인지?

    • 2009.03.15 0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해외에 살아서 해외에 나온 다른 일본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또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있었지요. 하지만 역시나 제가 만난 사람들만으로 한 나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저만을 보고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만큼 가지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나라는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분노해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들은 악플을 달고 흥분을 하고 욕을 해댑니다. 심지어 누가 좋은 일을 했다는 말에도 나쁜 말을 해대지요. 마치 모든 것에 분노하고 있고 이를 인터넷이란 공간에 풀어버리는 느낌이랄까요?

      일본친구들 중에 저에게 한국 사람을 만나면 적의를 보이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사실 본인이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에 대해 그들은 얼마나 사과해야하는 것일까요. 알 수야 없지만 만일 제 조상 할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잘못을 했고 제가 세월이 흘러 그 후예를 만난다면 미안하다는 말외에 나도 할아버지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는 말외에 무엇을 더 해줄 수는 없지요. 하지만 가끔 여전히 그런 말로는 부족하다고 하는 사람들, 너의 할아버지가 나쁜 인간이니 너도 나쁜 인간임에 틀림없어라고 한다면.. 아마 더이상 대응할 말이 없을 것 같아요.

      한국도.. 많이는 아니지만 다른 나라에게 잘못을 한 경험이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순결한 사람들이 아니지요. 남을 괴롭힐 힘이 있는데도 괴롭히기는 커녕 돕는 것과 힘이 없어서 괴롭히지 않고 있는 것은 다르다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인 중에는 힘이 있을 때 (그러니까 현재) 우리보다 약소국인 사람들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 나라입니다. (흑인에게는 함부로 하고 백인에게는 왠지 친절하다든가.. 학력이나 직업이 좋으면 좋게 보이려고 하다가 자기보다 권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잔인해지기도 하다던가) 제가 보기에 현재로서만은 아직 화나있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구요. 일본인이 더 좋다 한국인이 더 나쁘다가 아니라.. 그냥 뭉뚱그려 악의를 보내도 좋을 만큼 우리가 선하지도 않고 상대가 악하지도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 김훤주 2009.03.15 14: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외람됩니다만, <흠>님 말씀에 한 표!!!

  3. 날아올라 2009.03.14 20: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조하시라고 올려봅니다. 일본인들은 이렇게 우리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http://www.shc.usp.ac.jp/kawa/park/park1.txt

  4. 반골 2009.03.14 2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고맙습니다.^^

    • 김훤주 2009.03.14 2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가벼운, 입문서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리고 처음 쓸 때는 우리나라 사람을 독자로 상정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그런 면에는 조금 더 주의해서 읽어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5. 2009.03.14 2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어를 강요 당한 걸 다문화 가정 출신 아이의 말과 비교한 건 적절하지 않아 보이네요.

  6. 책임전가의달인일본인 2009.03.15 06: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사회는 공동체사회입니다..이기적인 공동체를 위해 존재하는 사회이죠.
    문제가 일어나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래야 해결되죠~ 책임전가의
    달인들이죠..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인간들이기 때문에 책임을 남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많지요.. 결국 관동대지진을 한국인 책임으로 몬것이죠.. 일본사람들은
    정말 이기적이에요.. 기부문화도 없고,사회적인 룰때문에 이지메 안당할려고
    그걸 겉으로는 웃으면서 숨기지만.. 스트레스 엄청받는 사회입니다..
    한편으론 로보트같은 그들이 불쌍하기 그지없습니다.. 거짓행복,거짓웃음,거짓미소,거짓평안속에서
    사는 그들은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대놓고 불행하지만 그사람들은 속으로 불행을
    겉으로 행복한척 하는것 뿐입니다....

    • 김훤주 2009.03.15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것은 몰라도, 관동대지진에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을 풀고 한다는 식으로 선동한 잘못은 일본 지배집단에게 있습지요. 일본 전체를 뭉뚱그려 비판을 한다거나 하면 사실은 아무것도 비판하지 않는 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7. 시게 2009.03.15 08: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이 다시금 그런 못된 짓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바로 코앞에있는 한국은 힘을 키워서 일본을 당당하게 견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8. 표푸 2009.03.15 23: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해자, 혹은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라는 것.. 어떻게 가능하게 된걸까요?
    문화적인 성숙도의 차이일까요, 아니면 경제적 부강함에서 오는 정신적인 여유일까요..
    일본의 장애인 복지 제도는 놀라운 수준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한국에게 지금 필요한것은 현재의 일본을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기 일본에 의해 잔존한.. 식민사관이라든지, 친일파 문제와 같은 것들을 경멸하고 깨끗하게 청소해내고자 마음먹는게 아닐까 싶어요.
    반일감정.. 지금은 가질려고 해도 관심이 안생기네요. 내 나라 챙기기에도 바쁜 듯.

  9. 날아올라 2009.04.01 16: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인의 편리함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언젠가 일본인과 메이지 시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 일본인은 메이지 유신을 비롯해 근대화의 성공에 대해서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인의 한 명으로서 일본의 성공을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가 더 진척되어 군국주의 시대 일본군의 범죄행위에 대해서 말을 꺼냈습니다. 그러자 그 일본인은 눈에 띄게 표정이 굳어지며 "내가 한 일도 아니기 때문에 내가 그것에 대해 책임질 입장은 아니다"라고 합니다. 바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일본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는 일본인의 한 명으로서 자랑하다가, 일본의 범죄행위를 이야기할 때는 너와 관계없는 일이 되느냐. 너와 관계가 있고 없고를 가르는 기준은 너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인가. 일본군의 범죄를 네가 하지 않았기에 너랑 상관이 없다면, 네가 그토록 자랑하는 메이지 유신은 네가 했단 말인가?" 그 후, 그 일본인은 절 외면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그렇게 공격을 당하면 저를 쌩까기 시작합니다. 위에서 일본인들이 전부 악하거나 선하지 않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들의 선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그 국민이 책임지지 않으면 대체 누가 책임지죠? 그런 점에서 일본인들은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여전히 신민일 뿐입니다. 주인은 책임을 지는 자이지만, 신민은 지배를 당하는 자이죠. 그러고보면 일본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이룩한 역사가 없습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것도 사실은 대정 민본주의의 번역이죠. 민본주의란 말에 국민의 주체가 아닌 객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안 비열한 일본 지식인들은 '민본주의'라는 말을 '데모크라시'로 바꿔서 진실을 은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대단하다고 말하는 일본의 시민사회, 지식인 사회의 추악한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