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종종 아들녀석에게 돈을 빌립니다. 카드를 주로 쓰다보니 지갑에 항상 현금이 별로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돈이라는 게 빌려쓸 땐 '공돈'이지만, 갚을 땐 '쌩돈'이신 거 아시죠?

어제도 아들녀석에게 빌린 돈 4만 원을 갚은 아내는 아까운지 입맛을 다지며 두리번거리군요. 그러더니 방 구석 어디엔가 놓여 있던 동전 저금통에 눈길을 멈췄습니다. 갑자기 눈에 빛이 나는 것 같더니, "저 저금통 깨서 내가 가져도 돼?" 하고 묻습니다.

그래서 그냥 무심하게 "그래"라고 했죠. 아내가 저쪽 방으로 저금통 두 개를 가져가더니 그 때부터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저는 이쪽 방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는데, 연신 "야~ 돈 세는 재미가 짭짤하네~" 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도 나는 무관심하게 인터넷에만 열중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윽고 아내와 아들녀석이 "아버지, 이거 사진 찍어요. 블로그에 올려야죠." 라는 겁니다. 아! 어느새 아들녀석과 아내도 '블로그 마인드'를 확실히 갖추고 있었던 겁니다.

저도 "참 그러면 되겠네?" 하며 카메라를 챙겨 저쪽 방에 가봤습니다. 아래와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거 세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을텐데, 참 대단합니다.


아마 천 원짜리 종이돈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천 원짜리와 오백 원짜리, 백 원짜리, 오십 원짜리, 십 원짜리를 모두 열 개씩 분류해놓았더군요.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가위는 오른쪽 저금통을 깨느라 동원했고, 계산기도 갖다 놓았더군요.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비닐봉지를 가져오더니 단위별로 돈을 넣어 봉투엔 매직으로 갯수와 액수를 써넣었습니다.


어제 아내와 아들녀석이 깬 저금통 두 개입니다. 컵라면은 크기를 가늠해보시라고 가운데 배치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저금통에서 나온 돈은 모두 얼마일까요?


보시다시피 11만 7770원이었습니다. 예상보다 적더군요. 전 저금통 한 개당 적어도 10만 원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어쨌든 아내와 아들녀석은 이렇게 돈을 정리해 쌓아두고 흐뭇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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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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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비단안개 2009.03.14 14: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행 적금 탔을 때 보다 더 기분 좋을 때가
    돼지저금통 잡을 때였습니다.
    ㅈ적금은 다달이 얼마씩 표가 나게 들어 가지만, 저금통은 오며가며, 굴러 다니는 동전 등 -
    무심결에 넣었거든요.

    저희는 아기아빠가 혼자 돼지를 키우는데,
    잘라 가지는 건 접니다.
    휴가 전이나 성탄 전요 -

    그렇다고 생판 나쁜 여편네는 아닙니다.
    저도 가끔 넣어주거든요.

    그나저나 4만원 이상인데, 나머지는 뭐 하나요?

  2. 댕글댕글파파 2009.03.14 2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 저도 한 번 저금통을 깨서 우체국에 가져갔더니 50만원 조금 안되더군요. 500원짜리 위주로 모아서 그런가 봅니다. 그 뒤로는 오직 500원짜리만 모읍니다. 가끔 은행에가서 몇 만원치 500원으로 바꿔서 채우기도 하구요 ㅎㅎ

    다른곳은 잘 모르겠는데 우체국은 동전을 가져다 주면 현금으로 주진 않더군요. 항상 통장에 넣어서 주던데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귀찮게시리...-_-;;

  3. 정현수 2009.03.15 0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금통을 깬다는 행사는 정말 신성한 의식이라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너무 거창한가요? ㅋㅋ 우리도 일년에 다섯 번(가족 수만큼 생일 때마다) 저금통을 텁니다. 그때마다 얼마나 모였는지 온가족이 모여 세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돈세는 일만큼 재미있는 노동은 아마 없을 겁니다. 우리는 저금통을 깰 때마다 3만원이 최고인데... 후훗 부럽네요... 잘 읽었습니다. 공감을 하면서.

  4. 그런깜냥 2009.03.15 1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일하는곳에선 그..정수기에 거꾸로 끼우는 큰 생수통 있잖아요?
    거기에 동전을 모으고 있습니다.
    다들 별 생각없이 50원, 10원짜리 동전들을 거기에 모으는데
    동전이 반 넘게 차니깐 엄청나게 무거워 보여서 다들 엄두를 못내고 있어요.

    • 김주완 2009.03.15 12: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거 깨면 액수가 상당하겠네요. 그런데 일하는 곳이라면 누가 개인 소유로 할 수도 없을테고...결국 공익적인 일에 쓰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