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는 우리나라 서양사학계의 새로운 관점 정립을 위한 애씀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앞에서 소개한 <특강>과 마찬가지로 '관점의 변화 또는 진화'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는 단일한 또는 유일한 세계사를 뛰어넘자는 시도입니다. 제게는 이런 기억이 있습니다. 1982년 대학 1학년 때 교양 철학을 배우는데, 교재가 <세계철학사>였습니다.

어느 출판사가 펴낸 책인지는 알지 못하는데, 내용은 죄다 서양(=유럽) 일색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인도나 중국 같은 큰 덩어리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때 우리는 그런 것이 문제인지 아닌지도 몰랐는데, 우리를 가르치던 김용옥 선생(빡빡 깎은 머리에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죠.)이 그것을 짚어줬습니다. 지금 대학에서 가르치는 철학의 역사는, 동양을 빠뜨린 '반쪽짜리'일 뿐만 아니라 그래서 '잘못된' 세계 철학 역사라고 말입니다.

이런 기억이 있기 때문에 저는 이번에 이 책을 아무 망설임 없이 단번에 골라잡았답니다. "유럽중심주의 극복이라는 문제의식을 입장 천명 수준에서 구체적인 역사 서술에 대한 검토 단계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이 책은 책머리에서 밝혔습니다.

유럽중심주의는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뼈 속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개신교 신자를 중심으로, 우리나라를 '극동(極東)'이라 이르는 이들도 없지 않은데 이는 유럽 가운데서도 서(西)유럽을 중심으로 삼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표현이지요. 서양이 표준이 되고 유럽이 선진이 되는 그런 생각과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과 현실에는 물론 근거가 있습니다. "19세기 중엽에서 약 1세기에 걸쳐 유럽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패권을 행사했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유럽중심주의=유럽이 스스로를 '문명'으로 인식하고 자신만이 '근대성'을 성취하는 '진보'를 이뤘으며 따라서 보편적 인류 지도권이 있다는 생각은 이미 18세기 후반에 체계를 갖췄"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기만 할까 하는 데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의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유럽의 세계 제패를 가능하게 한 영국 산업혁명을 보기로 들자면 이렇습니다. 여태 대부분은 영국 산업혁명을 놓고 "외부 개입 없이 영국 사회의 내적 역량을 바탕삼아 이룩된 것"이라는 긍정 평가가 대다수였습니다만.

이 책은 프랑크나 홉슨 같은 제3세계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가져와 '11세기 중국의 철 생산 수준은 18세기 영국보다 높았으며 영국은 19세기가 다 돼서야 중국의 11세기 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고 얘기해 줍니다.

산업혁명의 대들보 면포 방적도 마찬가지. '중국 직조 기술자들이 13세기에 이미 발명해 놓은 산업용 방적기 주요 부분의 전파가 영국 면직물 발전의 기초'가 됐다지요.

물론 이런 얘기가 '영국 산업화가 오로지 중국적 기초에 근거해 이뤄졌다'는 주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유럽이 인종, 민족, 제도, 그리고 자본주의 정신 등에서 아시아 지역보다 우월했기 때문에 근대 산업화에 성공했다고는 보지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오히려, "유럽이 세계 경제의 (반)주변부에 머물러 있었고 그 '후발성'의 비교우위를 이용해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동아시아가 '후발성'의 비교우위를 이용해 급속도로 산업화에 성공한 사례와 비슷하다"고도 합니다.

이 같은 비판적 검토와 도발적 서술은 책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당연하다 여기는 고대 그리스를 두고도 "그게 과연 '유럽적인' 문명인가?" 물을 정도입니다. 이러니까, "중세 유럽 십자군 전쟁이 원정인가 침략인가?"는 물음이나, 로마제국 정통성을 유럽으로 돌리고 비잔티움제국을 구석으로 처박는 편향된 인식에 대한 비판이 여기서는  당연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 여러 나라의 침략과 지배를 몸소, 그리고 오랫동안 겪어야 했던 라틴 아메리카에 일어난, '유럽에 대한 인식과 자기 정체성 탐색'도 이 책은 제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훤주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 - 10점
한국서양사학회 엮음/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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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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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24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김훤주 2009.04.25 16: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터넷으로 제가 일러드린 대로 신청하시면 곧바로 인터넷으로 신청 접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더 이상 무슨 다른 확인은 할 필요 없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조선일보에 연락해 구독 취소를 하셔도 됩니다. 이 경우 상품권 따위도 다 돌려줘야 합니다. 저는 어지간하면 1년 동안 계약대로 봐주라고 권합니다. 구독료 1만5000원씩 내고요. 신고포상금 몇 배 더 받으니까요.

  2. 성우제 2009.04.25 0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훤주 기자, 당시 김용옥 교수는 머리 빡빡 깎지 않았었는데? 머리에 포마드 바르고, 양복 쪽빼 입고 다녔지. 그리고 교양철학은 2학년 1학기 때 배웠는데? 그때, 러셀이 쓴 <서양철학사>가 교재였지. 영어 원서였는데... 책이 쉽고 재미나서 원서였는데도 그다지 어렵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네. 내 형 친구가 내 방에서 그거 빌려간다고 해놓고는 30년 가까운 지금도 돌려주지 않고 있네.

    위는 트랙백 단 것은 시험 삼아 해봤는데, 엉뚱한 곳에 와붙었군. 블로그 시작한 후 독자를 처음으로 끈 글인데... 이곳의 뉴스이니 관심이 생겼던 모양이야.

    • 김훤주 2009.04.25 2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시 기억을 해 봤는데. 적어도 내 머리에는 김용옥 선생이 머리를 빡빡 깎고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다고 돼 있네? 철학과 선배가 한 명 있었는데, 이 선배가 김용옥 선생 비판을 꽤 했어. 진짜 철학자는 옷으로 티내거나 하지 않는다고 말이야.

      2학년 1학기였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고.

      영어 원서로 강의를 하지는 않았는데, 서양 철학사였어. 맞아. 지금도 나한테 그 때 교재로 썼던 책이 있어. 집문당에서 82년 2월인가에 펴냈군.

      그러니까, 아마 내가 얘기하는 강의하고 우제가 얘기하는 강의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김용옥 선생한테 교양 철학 강의를 들은 것은 분명해. 김용옥 선생이 기말 시험 대신 아리스토텔레스인가 플라톤인가에 대해 리포트를 내게 했는데, 그 때 내가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던 기억이 있거든.



      그리고,,,,, 축하해. ^.^ 어떤 글이 사람들 눈길을 많이 끄는지 바로 알 수 있을 거야. 좋은 일이지.

    • 성우제 2009.04.26 04: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훤주 아저씨, 김용옥 교수는 82년에 부임했고, 우리는 <철학개론>을 서관 시계탑 아래 2층 강의실에서 들었지. 그때는 머리에 포마드를 발라 위로 넘겼고, 옷은 한복을 입다가 양복을 쪽 빼입었다가, 어떨 때는 중국 전통 복장을 하고 나타나기도 했지. 가방은 007 가방을 들고... 삭발은 1986년 양심선언하고 학교를 떠나면서 했고... 그러니 철학과 선배가 이야기한 '옷으로 티내기' 비판은 맞는 거지.
      러셀이 쓴 두꺼운 책이 주교재였고, 네가 가진 건 다른 과목의 고재거나 부교재였을 거야. 김교수가 내준 첫번째 리포트 숙제가 <세계의 문학>에 실린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논문 읽고 감상 적어내는 것이었는데, 배모 학우가 "히틀러와 같은 독선이 느껴진다"고 썼다가, 한 시간 내내 혼난 기억이 나네. "야, 임마. 네가 뭔데, 나더러 독선이 느껴진대, 임마? 내가 히틀러야?" 하면서 핏대를 세웠지. 그때, 난 "아따, 저 냥반 성깔 있네"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성깔 몬 이기더군. 김용옥 선생 강의가 인기 있었던 건 시험 대신 리포트로 대체했기 때문이기도 하지. 마지막에 "대단하십니다" 칭찬 몇 마디 적으면 A플러스는 따놓은 것이었으니... 훤주 아제만 좋은 평가 받은 게 아니라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