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좀 있습니다.

<똥파리>는 사람 참 혼란스럽게 하는 영화다 싶습니다. 갈피가 잘 잡히지 않습니다. 물론, 쉽게 말하자면 ‘가정 폭력’을 심각하고 실감나게 다룬 영화입니다. 전반적으로 독립영화답지 않게 잘 짜였기는 합니다만.

가정 폭력을 다룬 영화라는 점은, 관객 반응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좋다는 얘기를 듣고 가기는 했는데 몇 장면 보고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나왔다는 얘기를 저는 들었습니다.

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몇몇 들어와서는 영화를 보는 내내 훌쩍거렸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자기 어린 시절하고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가정폭력을 뛰어넘는 무엇이 안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살이나 사회 현실 일반에 대한 폭넓은 접근 또는 규정 같은 무엇이 말입니다.


1. 영화 시작은 좋았는데


첫 장면. 길거리에서 남자가 여자를 때리고 있습니다. 여자가 말로라도 저항을 해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때려서 거의 죽도록 만듭니다.

주인공 상훈이 나타납니다. 먼저 남자를 때리기 시작합니다. 확실하게 때리더군요. 신음도 나오지 못할 정도로 때리고 나서 맞던 여자에게로 갑니다.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은 따뜻한 말 한 마디나 아니면 동정이 실린 무시 정도를 기대하는데, 영화는 이런 기대를 깡그리 무시했습니다.


상훈은 엉망이 돼 버린 여자 얼굴 위에다 침을 ‘퉤’ 뱉고는 “왜 맞고 다녀. 이 년아.” 그러면서 두드려 팹니다.(제 기억에 순서가 바뀌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상훈이 어떻게 난폭한지가 아주 잘 드러나는 구성입니다. 본성이 전방위로 난폭하다, 누구에게는 덜하고 누구에게는 더한, 사람이나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그런 폭력이 아니다, 상훈은.

2. 상훈이 죽어야 하는 까닭이 있나

제가 보기에, 상훈은 아무 까닭 없이 살해됩니다. 영화 속에 상훈이 죽어야 할 필연이 전혀 없습니다. 데리고 다니던 똘마니한테 그리 당해야 하는 까닭은 더더욱 없습니다.

똘마니 영재(여자 주인공 한연희의 동생)가, 미리 망치를 숨겼다가 뒤를 노려서 때려죽이도록 만든 것은 더더욱 어색했습니다. 물론 마지막 얼굴은 ‘리얼’했습니다만.

더 나은 전개(展開)가 떠오르지 않았거나 주어진 돈이 모자라 그랬겠지만, 조금 신파(新派) 느낌이 들더라도, 이를테면 빚쟁이를 잡으러 쫓아가는 장면을 설정하는 것이지요.


그래 놓고는 어떤 국면에서 실수로 떨어져 죽게 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필연이 아니라 우연을 개입시키는 것이 더 나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보고 나서 자꾸 들었습니다.


3. 주검 위에 새롭게 구성되는 식구

상훈의 죽음은 퉁퉁 부은 채로 덜렁거리는 손과 팔로 나타났습니다. 병원에 실려 들어오는 장면입니다. 아주 실감났습니다. 상훈 조카의 유치원 행사는 이로써 성공적으로 마감됩니다.

상훈 조카의 유치원 행사는 영화에서 만남과 떠남의 계기입니다. 상훈은 조카 유치원 행사를 앞두고 용역 깡패를 그만둘 마음을 먹습니다. 그러면서 그 뒤 만남을 엮어 둡니다.


상훈이 몸담았던 용역 업체 대표 만식(친구이기도 하지요.)을 상훈 누나(조카의 엄마)와 만나게 합니다. 함께 어울리던 연희도 끼이도록 했습니다. 만식은, 깡패 노릇 그만하겠다는 상훈 때문에 용역 업체를 그만둡니다.


여태껏 상훈으로부터 폭력적으로 배척받던 상훈의 아버지도, 자살하려 했다가 상훈 때문에 실패한 뒤 여기 같이 어울립니다. 중심인물이 된 만식은 상훈 아버지를 자기 아버지처럼 모십니다.(장인이 될는지도 모릅니다.)

반면, 상훈은 자기가 데리고 다니던 영재에게 맞아 죽음으로써 영원히 떠나게 됩니다. 또 연희 아버지는, 연희가 이 쪽 공동체에 끼이게 됨으로써 더욱 외로워집니다. 영재는, 상훈처럼, 원래부터 떨어져 있었습니다.

한영재


4. 상훈이 남겨 놓은 두 갈래

명확한 결말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영화 <똥파리>에는 길이 두 갈래로 나 있습니다. 하나는 앞에 말한 새로운 식구의 구성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재와 영재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양다리 걸쳐진 연희가 있습니다.

영재 아버지는 닫힌 공간에 격리된 채로 멀리 떨어져서 내다봅니다. 그런 아버지를 영재가 때릴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큰 틀에서는 상훈-상훈 아버지 관계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연희는 영재와 아버지하고 얽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른바, 핏줄이니까요. 그러면서도 상훈 누나·상훈 조카·상훈 아버지·만식과도 당연히 얽히겠지요. 새로운 가족 구성이 시대의 대세이니까요.

이런 가운데에서, 불쌍한 연희는 새로운 식구와 옛적 식구를 오가는(또는 새로운 식구에 끼이면서도 옛적 식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처량한 존재가 됩니다.


만식은 상훈과 함께 용역 깡패 짓을 해서 모은 돈으로 식당을 차립니다. 영화에서 식당은 꽤 잘 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돈을 더럽고 악하게 벌어들인 사업에서, 돈을 깨끗하고 선하게 벌어들이는 사업으로 탈바꿈을 합니다.


영재는, “우물쭈물하지 마라.”고 상훈이 일러준 이상으로 주먹을 잘 휘두릅니다. 새로 만들어진 상훈의 분신 영재는 더럽게 악하게 버는 행동을 계속합니다. 연희 눈에는 영재가 상훈과 겹쳐 보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상훈이라는 현실에서 만식과 영재가 함께 피어났습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상훈은 영재와 만식 모두에게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다, 는 얘기를 하는 셈입니다.


5. 마지막에 드는 물음

많은 사람들이 만식이에 대해서는 별로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상훈을 때려죽인 영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게 여기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만식이 식당을 어떻게 해서 차릴 수 있었는지가 핵심이었습니다.

만식이 식당을 차린 종잣돈은 용역 깡패 노릇에서 나왔습니다. 피 묻은 돈이고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대가로 받은 돈입니다. 그렇다면, 만식의 식당을 기반으로 피어나는 웃음은 무엇일까요? 종잣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런 것인가요?

상훈 누나의 웃음, 상훈 조카의 웃음, 만식의 웃음, 연희의 웃음, 상훈 아버지의 웃음. 이들의 웃음을 보면서 조금은 안심이 된다는 듯한, 영화 보는 이들의 웃음. 이 웃음들의 정체가 무엇일까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조금은 턱없지만, 웃는 사람은 모두 공범이 아닐까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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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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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우제 2009.05.04 0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훤주, 잠 안자고 올렸군. 신문 기사로도 나가는 거냐?

    • 김훤주 2009.05.04 1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니, 안 나가. 영화는 다른 친구가 맡고 있거든. 게다가 신문에는 이렇게 스포일러(나도 몇 달 전에야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지만)가 있는 글은 어울리지 않는다네???

  2. 파비 2009.05.04 19: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똥파리 한번 보고 싶긴 한데, 너무 무서울 것 같아서... 우린 무서운 영화는 별로거든.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멜로를 좋아하거나... 아니면 헐리우드 식 터미네이터, 이런 거는 또 전혀 안 무섭더라고... 장난인 줄 아는 거지.

    • 김훤주 2009.05.05 1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면서 머리나 마음이 힘들지는 않은데, 몸을 아주 힘들게 하는 영화야.

      보고 나서 몸에서 따뜻한 기운이 다 빠져 나가 오들오들 떨었다네, 또 살이 덜덜 떨렸다네.

      91년인가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볼 때 말고는 이런 경험이 나는 한 번도 없었어.

    • 파비 2009.05.05 1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쨌든 한번 꼭 보긴 봐야겠네. 박쥐도 봐야 되고... 아 갑자기 바빠지넹.

    • 김훤주 2009.05.06 0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돈이 좀 들더라도 보셩. 그런데, <박쥐>는 별로일 것 같애. 잘은 모르지만. 캐릭터에 주제가 가려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네.

  3. 이승은 2009.05.05 0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훈이 죽어야 하는데에는 영화속에 이미 암시가 되어 있습니다.

    극중 이미 죽은 것으로 나오는, 연희와 영재의 어머니는 생전에
    포장마차를 하셨던 것으로 나옵니다.
    그 때 철거를 맡았던 용역업체가 바로 상훈이 속해있던 만식의 용역업체입니다.

    그 때 이른바 "깽판"을 치는 장면에서, 상훈의 어머니가 그 광경을 보고 식칼을 휘두르다가
    용역업체 직원 중 한 명의 팔에 깊은 상처를 내는데요.
    그 직원의 얼굴은 그 때 영화에서 공개되지 않은 채로 장면은 마무리 됩니다.
    하지만 연희와 영재의 머리 속에는 그 광경과 그 용역 업체 직원이 팔을 다친일이 깊게 상기 되어 있죠

    그 이후 영재가 만식의 용역업체에서 일하게 되는데요.
    상훈이 영재 앞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영재가 팔에 흉터를 발견합니다.
    자기의 어머니의 포장마차에 "깽판"을 치던 용역업체 직원에게 났던 것과 같은 자리, 같은 각도의 흉터말이죠. 그 때 영재가 상훈의 흉터를 보고 움찔하면서 분노하는 표정을 짓는데요

    이것이 영재가 상훈을 죽이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블로그 글의 2번 글에 답이 되엇으면 좋겠습니다

    • 김훤주 2009.05.05 00: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희들끼리 얘기할 때에는 나름대로 공감이 됐습니다만, 일반의 지평으로 넓혔을 때에는 모자라겠다 싶었다는 얘기입니다.
      언뜻 스쳐 지나가는 그런 것으로 중요한 한 부분을 마무리지을 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생님 주신 소중한 얘기는 새겨 들었습니다.

  4. 황은주 2009.05.05 0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봤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 직업을 가졌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불편한 욕설은 결국 불편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지요 단순히 가정폭력 때문이라고 말 할 수 없는 현실이 지금도 우리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희극으로 끝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비극은 윤회처럼 멈추지 않습니다 상훈의 폭력적 삶에는 이유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그 이유가 진실일 수는 없습니다 오랜만에 수작을 보았습니다

    • 김훤주 2009.05.05 1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실에서는 희극이 비극의 원인이 되고 비극이 희극의 원인이 되고 하는 식으로 엉겨 있습니다. 물론 비극이 비극의 원인일 때도 있고 희극이 희극의 원인일 때도 많습지요. ^.^
      제가 보기에, 상훈이 폭력을 하는 이유도 나름 진실이고 또 절실한데, 문제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객관적이지 못하고 절대적이지 못한) 측면이 매우 크다는 점에 있겠지요.

  5. 똥파리 2009.05.05 1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훈에 죽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 합니다
    한영재가 일을 못해 상훈에게 맞고 욕먹고 무시당하면서 감정이 쌓이기 시작하죠
    상훈이 망치에 맞고 저항할 힘도 없다 싶을때 복수도 하고 필요한 돈도 챙기고 하는 설정이
    건달들 나오는 영화에 결말이 약간 식상하다는 생각도 들긴했지만
    한연희와 영재 두 남매의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것도 생각하면
    극중 마무리상 나름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글쓴님 말대로 만식이의 만행을 저또한 별로 생각지 못했던것 같네요^^
    잘 보구 갑니다!

    • 김훤주 2009.05.05 11: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상훈을 어떻게 퇴장시키느냐 하는 면에서 볼 때 자연스럽지 못했다는 소감이지요. 뭐 별 얘기는 아닙니다.

      '만식이의 <만행>' 아닙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말씀드린 적 없고요, 단지 그렇게 돌고 돈다는 얘기입니다. 거꾸로, 만식이 죽고 상훈이 살아남았어도 똑같이 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만식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사는 싸이클이 그러하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6. 요케켓 2009.06.19 2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봣습니다
    훤주님 글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앗습니다
    한데 이승은님께서 똥파리의 죽음에대해서 말한걸보고 영화를 다시본결과
    똥파리가 칼침맞을때는 영재가 그 자리에 없엇고 똥파리가 웃통벗고 상처보여줄때
    영재가 쳐다보기는 하지만 울컥한다거나하는 장면은 전혀없엇습니다
    영화야 보는사람의 생각에따라 다양하게 해석될수도있지만
    똥파리의 죽음은 영재의 복수라기보다는 잠깐 맛이간 영재가 우발적으로 망치를 휘두른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망치조차도 미리 준비해둔 것이 아니고 돈받으러 갓다가 갑자기 똥파리를 어택했던
    채무자의 망치를 뺏어온것으로 보이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오히려 훤주님의 말처럼 똥파리를 보내긴 보내되 좀 뻔할 뻔데기 같은 장면이어도 가다가 느닷없는
    골목길 난폭운전자의 테러로인해 차에 받혀 날아가셧으면 어떨까 싶기도합니다

    *참고로 똥파리가 칼침맞을때 모자를 쓰고있긴했었지만
    누가봐도 똥파린줄 알수있을정도로 얼굴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글고 영재 엄니를 돌아가시게 한 분은 따지고 보면 방망이 휘둘러 두개골을 쪼갠 만식님이었습니다
    영재가 정작 복수해야했던 사람은 똥파리가 아니라
    만식이엿던것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