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이 쓴 소설 <즐거운 나의 집>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328쪽이네요. 마지막 즈음 이 대목을 읽다가, 공지영이 자식들 키우면서 남의 말로 마음 많이 다쳤구나 싶었습니다.

<즐거운 나의 집>에 나오는 엄마는 아들이 둘 딸 하나 있는데, 셋은 저마다 성(姓)이 다릅니다.

나는 이제 곧 스물이 된다.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고 나서, 엄마 나는 그런 생각을 했어……. 이제 더 이상 교복을 입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야.

초등학교 일 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아니 그 이전의 유치원 때부터 선생님들이 생각났어.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은 알까? 그들이 실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어왔는지. 그것이 상처든 감동이든 지식이든 말이야…….

엄마,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어. 그래서 엄마 없는 아이들을 돌보아주고 싶었어. 아빠 없는 아이들, 아니면 아빠 엄마 다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어.

학부모님께, 시작하는 통지서 대신 보호자 되는 분께, 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 수업 시간에 무심히 내일 엄마 오시라고 해요, 라는 말 대신 보호자분 오시라고 하세요, 라고 하고 싶었다고."

맏이로 나오는 위녕이 고3을 마치면서 한 말이겠습니다. 집에 온지 이태만에 다시 집을 떠나 교육대학을 가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엄마 모습입니다. 실제라고 착각은 하지 마시기를. 소설 속 스토리일 뿐이니까요.

운전대를 붙잡고 있는 엄마를 무심히 돌아보았는데 엄마의 뺨 위로 뜻밖에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엄마는 내 말보다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리고 아마 자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또다시 나와 연결된 수많은 지난날들을 떠올리고 있었나 보다. 엄마의 눈물은 고통스러워보였으니까. 원망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엄마는 마음 한구석의 상처들을 다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소설 들머리 11쪽에는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위녕이라는 주인공 아이의 쓰라림을 쓰라리지 않게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공지영이라는 작가의 의도였으니까요.

엄마에게는 이미 두 아들이 있다. 성이 모두 다른 동생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닮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들 저희 아빠를 닮았기 때문이다.

"내 배 아파 낳았는데, 열 달 동안 맥주 한 잔 못 먹고 담배 피우고 싶은 거 꾹 참고 낳았는데, 게다가 너희 낳고 이십 킬로도 넘게 불은 살덩이들 빼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성도 엄마 게 아니고 얼굴도 엄마 게 없으니……."

엄마는 우리 셋을 앉혀놓고 그렇게 말하며 하하하 웃곤 했었다. 하지만 그 말 뒤에 얼른 이런 말들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너희를 다시 얻기 위해서라면 다시 그 시절로도 돌아갈 수 있어. 솔직히 누가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정말 돌아가기 싫지만 그래도 갈 거야. 엄마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 한 건 너희를 낳은 거니까."

그런데 이런 데서는 쓰라림을 쓰라리게 느끼도록 해 줍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28~29쪽입니다.

유치원 때부터 나는 특별했다. 한번은 날 유난히 예뻐하던 유치원 선생님을 두고 친구의 엄마가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이 쟤만 이뻐한다고 속상할 거 없어. 쟤는 엄마가 없는 아이잖아."

친구의 엄마가 나쁜 의도로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리 어린 나지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산 나는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고 말았다. 집으로 가려고 막 유치원 문을 나서려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나는 그날부터 모든 학업에의 열의를 잃었던 것 같다.

위녕은, '학부모'라는 낱말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 우리 어버이가 제가 고등학교까지 모두 마칠 때까지 살아계셨고, 또 헤어지거나 하시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니다. 저와 제 조건이 그런 범주에 들어가니까, 그런 범주가 과연 맞는지 안 맞는지 따져보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 동기 가운데도 어머니나 또는 아버지가 없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버이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랑 사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은 기분이 어땠을까, 문득 돌이켜 생각해 봅니다. 내일 엄마 모시고 와, 이렇게 선생님 말씀할 때 느낌이 어떨까 생각을 지금까지는 한 번도 못했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 저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쾌활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친구가 집에 가서도 유쾌하고 혼자 있을 때도 통쾌하고 하리라고만 여겼습니다. 아버지가 없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오늘 스승의 날에, 진짜 스승이 되고 싶은 선생님은, <즐거운 나의 집>을 한 번 읽고(이미 읽었다면 한 번 더 읽고) '내가 무심결에 내뱉는 한 마디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아이들 가치관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도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느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왜 맑은 날씨만 좋다고 하는지를, 따져 묻는 장면을 올려봅니다. 53쪽입니다. 스승의 날과 바로 관련이 되지는 않지만, 가르침을 업으로 하는 이는 왜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하는지(적어도 깨어 있으려고 애써야 하는지) 곰곰 생각게 하는 장면입니다.

"야아, 오늘 날씨 좋다……. 엄마는 여름이 좋아. 태양은 뜨겁고 이파리는 진한 푸른빛이고 건조한 바람이 씽씽 부는 거……. 오늘이 딱 그런 날이네. 어때 위녕, 너무 좋지?"

"아니, 난 싫어. 난 음산하고 춥고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고 비 뿌리는 게 좋아."

내가 대답하자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날을 좋아할 수가 있어?……너 참 별나다"

그러면 나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에게 대꾸했다.

"세상에, 어떻게 여름날을, 것도 태양이 뜨거운 날을 좋아할 수가 있어? 게다가 작가가…… 참 별나네."

"아니, 작가가 맑은 날 좋아하는 게 뭐가 어때서 그래? 생각해봐, 심지어 고기압이 다가와 맑은 날이 되면 일기예보에서 좋은 날씨라고 해, 전 세계에서 다 그런다구."

"사람들이 그러든지, 일기예보에서 그러든지, 어쨌든 난 춥고 흐린 날이 좋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맑은 날을 좋은 날씨라고 판단해버리는 건 횡포잖아. 엄마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걸 존중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며?"

김훤주

즐거운 나의 집 - 10점
공지영 지음/푸른숲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글쓴이 : 김훤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실비단안개 2009.05.15 2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엄마는 당연히 집에 계시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지금도.

    • 김훤주 2009.05.16 0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친구가 부산에서 선생님을 하는데, 이른바 결손 가정을 자기는 선생님하면서 처음 봤다네요. 좀 험한 동네 중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3분의1가량이 그랬답니다. 그래서 많이 놀랐다 그랬습니다. 이 친구는 말을 조심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하려고 애쓰지요.

  2. ,봄나무 2009.05.16 05: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공지영에 관한 글을 함께 쓰게 되었군. 그런데, 공지영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다른 것 같아.

    물론 그대의 시각은 부모에 관한 것이라, 특수한 형편에 놓인 공지영에 대해 새로운 것을 얻어낼 수는 일으 것인데...

    물론 그 작가에게도 이런 저런 좋은 면이 있으니 대중들에게 널리 읽히겠으나, 내가 보기에 겉멋과
    허영으로 인한 구멍이 너무도 많다. 위에 트랙백을 붙였으니, 시간 나면 한번 봐라.

    난, 이민 와서 공지영 소설을, 처음으로 끝까지 다 보았는데, 그 전까지는 왜 끝까지 못 보았느냐 하는
    이유도 저 글에 들어 있다.

    공지영은, 내가 보기에, 80년대의 순정을 팔아먹고, 소설을 그저 팔아먹고 사는 작가로 보인다.
    공지영 소설에서는 "왜?"라는 물음이 없고, 물음이 없으니 답 또한 있을 리 없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학생운동 하고, 노동현장에 뛰어들고, 또 거기서 나온다.
    "왜?"라는 물음이 왜 없는가 하면, 내가 보기에 모르기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니, 자기가 얼마나 모르는지도 모른다.

    공지영의 유일한 강점이자 덕목은 소재 선택이다. 잡지 기자가 섹시한 아이템 잡아내듯
    시의적절하게 소재를 잘 잡아내지. 학생운동, 여권운동, 사형수 문제, 이제는 이혼 가정이
    흔해졌으니 싱글맘 문제에까지 이르렀다.

    글쓰는 자들의 기본기 중의 기본기인 사실 확인 작업을 공지영은 하지 않는다.
    나는 신경숙이 변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몇년 전에 나온 <리진>에서였다.
    엄청나게 쑤시고, 파고, 확인하고 들어갔더라. 그러니 소설에 힘이 생기지.
    그저 나른하게 앉아 쓰는 공지영류의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 말랑한 무협지류라 불러서 마땅한 게 아닌가
    싶은데...

    난 공지영을 보면서 ㄹ ㄱ ㅇ 을 떠올린다. 알아맞춰봐라, 누군가 하하.

    • 김훤주 2009.05.16 06: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 내가 모르는 얘기로군. 하하. 고맙게 읽을게.

      나는, 소설 안 읽은지 꽤 된다. 아마 20년이 다 돼 가지 싶네. 이 소설은, 우리 딸 현지가 사 달래서 사 주고 나서 같이 읽었지.
      공지영의 겉멋과 허영, 꼭꼭 씹어 읽고 감상문 제출할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