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전쟁은 너무 쉽게 일어난다. 게다가 전쟁은 민중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그 전쟁의 참화는 고스란히 민중의 몫이다.

당장 59년 전 한국전쟁에서도 수백 만 남북한 민중이 학살되고 전사했으며, 헤아릴 수 없는 여성들이 능욕당하는 참상을 겪었다. 그러나 북쪽의 김일성과 남쪽의 이승만은 털끝만큼의 정치적 손해도 입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전쟁을 철저히 이용했다. 정치적 경쟁자와 반대자를 일시에 제거하고,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구축했던 것이다.

나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들과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희생자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민중의 삶을 얼마나 참혹하게 파괴하는지를 절절히 느꼈다.

그래서 나는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를 '분단모순'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전쟁 위험을 제거하는 일만큼은 억만금의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본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그나마 잘한 게 있다면 역대 어떤 정권보다 바로 그걸 잘한 것이다.

극우기회주의자가 판치는 사회

2002년 서해교전 당시 '응징'을 외치는 일부 수구세력과 언론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비겁한 늙은이 이승만의 얼굴이었다. 이승만은 겉으로 '북진통일'을 외치면서, 뒷구멍으로 몰래 줄행랑을 친 인물이다. '응징'과 '응전'을 외치던 그들 역시 실제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자기 몸부터 보전할 인간들이다. 다만 그들은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이용해 극우반공으로서 자신의 입지와 권력을 챙길 욕심 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보수'가 아니라 '극우기회주의자'다. 그래서 그들은 햇볕정책도 끊임없이 '퍼주기'라며 딴지를 걸어왔다. 이번 개성공단 사태도 그런 그들에겐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황석영은 18일 저녁, 자신의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올려 최근의 논란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오늘 아침 변절 논란을 빚고 있는 소설가 황석영이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을 읽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안보의 원칙은 평화입니다. 금강산과 개성을 두고 혹자는 '퍼주기'라고 얘기합니다. ( … ) 한국경제의 신용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남북 분단의 리스크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퍼오기'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금강산에서의 사고와 단절 이후 사회단체 후배들과 협의한 뒤에, 현 정부와의 대화통로를 자청하였"다고 한다.

'평화열차' 이벤트 꼭 성사되길

그는 또한 '평화열차 세계 작가포럼'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동서양의 저명 작가 30여 명이 파리에서 출발행사를 갖고, 20세기의 분단지역이던 베를린에서 행사를 벌이고, 모스크바, 옴스크를 거쳐서 바이칼 부근의 동서양 접점인 이르쿠츠크에서 평화와 새로운 문명에 대한 대축전을 벌이고 울란바토르를 거쳐 베이징으로 내려와 국제열차편으로 평양에 들어가 행사를 갖고, 이미 지난 정부 때 시험 운행한 평양 개성 도라산 구간을 통과하여 서울에서 피날레 행사를 갖자는 기획안"이라고 한다.

이 구상은 다분히 그의 작가적 상상력이 낳은 이벤트성 행사로 보인다. 그는 "기차 6량을 유럽철도에서 대절하여 20일 동안 움직이는 '평화열차'는 바로 한국전쟁 60주년이 되는 2010년 여름에 달리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나는 요 며칠 사이에 있었던 황석영 논란에 별 흥미가 없었다. 놀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 지난 대선 때 백낙청 등과 함께 민주대연합(?)으로 이명박 당선을 저지하자는 기자회견을 할 때 '왜 저리도 상황파악을 못하나'하고 실망했었다. 그 때부터 나는 적어도 그가 '좌파'나 '진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더 실망할 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의 글을 보고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이 되었다. 자신이 밝힌대로 꼬여가는 남북관계를 풀어내고, '평화열차' 이벤트를 성사시키기만 한다면 그의 변신은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다. 어차피 정주영의 소몰이 방북 역시 이벤트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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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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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미예 2009.05.20 09: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셨네요. 황석영논란은 그만큼 사람들이 애정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애정을 버리고 일반 사람들 대하듯 하면 논란도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잘지내시죠.

  2. 파비 2009.05.20 0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전쟁의 최대 수혜자, 다른 말로 분단의 최대 수혜자는 김일성과 이승만이었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엊그제 9시 뉴스에 북한의 대남담당 최고위 누구가 총살 당했다는데... 그거 확실한 정보인지 아무도 말을 안하네요. 이러니 정보의 편식, 왜곡이란 소리가 나오는 거 아닐까 싶네요. 진보 쪽에서도 이명박 까는 건 신들이 나는데... 그 나머지기는 그냥 '뚝'이네요. 혹시 아는 거 있으신가 싶어서...

    그리고요. 제가 오늘 새벽 5시 28분에 포스팅한 "내조의 여왕..."이 경남블로거스에는 어제 14시 58분에 포스팅한 거로 되어 저 앞에 가 있더라고요. 몇시간 동안도 안 올라오길래 이상해서 뒤를 보니 글쎄 거기 있더구먼요. 이거 왜 이러는 건가요? 뭐, 별거 아니지만, 그냥 궁금해서요.

    • 김주완 2009.05.20 0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마 처음에 신영철 관련 글을 썼다가, 그걸 지우고 다시 내조의 여왕을 쓰신 것이, 메타블로그에서 신영철 글을 받으면서 인식한 시간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 김주완 2009.05.20 0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글을 메타에서 지우고, 다시 수집을 했더니 제 시간으로 뜨네요. 감사합니다.

    • 파비 2009.05.20 1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그리고 참 총살이 아니고 처형이네요.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 괜히 오해 할라... 그렇죠?

  3. 갓쉰동 2009.05.20 12: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일 전에 황석영 논란에 대해서 쓴글입니다..

    트랙백 걸었습니다.

    주완님 대선때 진보,좌파가 아님을 알았다고 하시는 군요.. 어디를 봐서 황석영이 그전에 진보/좌파로 보였던가요? 그의 글이나 행동에 좌파적이고 진보적인 면을 본적이 없는 사람으로..

    그런데 님은 여전히 황석영을 변신으로 보시는 군요..

    그나마 황석영 관련글에서 주완님의 글이 제일 봐줄만 합니다.

  4. 앞산꼭지 2009.05.20 15: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약간 고민스러운 지점을 제기하셨네요....하지만 위험한 생각인 거 같습니다.
    이것은 마치 노무현의 배신을 바라보던 지점과 비슷하게 보여집니다.

    노무현은 그의 배신을 그래도 뭔가 있겠지 하며 최소한의 기대를 가졌던 순진한 백성들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지요. 그와 한치도 다를 바가 없는 인간이라 생각합니다.
    황석영에 기대를 가질 수 없습니다.
    더 큰 실망감을 앉겨줄 뿐입니다.

    이명박 밑에서 저런 구상이 먹혀들어갈 것이라는 자체부터가 무리가 아닌가요?
    좇선일보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테고 말입니다.
    어떤 면에선 mb는 이미 한물간 정권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5. 괴나리봇짐 2009.05.20 16: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흑묘백묘론이 떠오르네요. 선배의 시각이야말로 '실용주의'인 거 같은데, MB는 뭘 실용이라 생각하는지...^^

  6. 만정 2009.05.24 12: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선생의뜻에 공감한다
    나는 그의 전술에 동의한다 사람들은그의 생각을오래지나야알게될것이다

  7. 부엉이 2009.06.03 07: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화열차? 겨우그것 때문에 광주항쟁을 폄하하고 용산학살 만행을 애들 싸움으로 묘사해서 그러면서 발전하는 거라고 말하는 황석영에게 기대합니까? 우리는 자신의 책을 팔아먹는 대상일 뿐이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