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대한민국(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에 사는 사람들은 통일을 마땅히 이뤄야 하는 당위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선은 제가 살아보지 않아서 구체 보기를 들기는 어렵고요, 한국에서는 이를 실증하는 보기가 적지 않습니다.

먼저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있습니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부릅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숱한 통일 단체들이 있습니다. 정당마다 단체마다 강령에서 통일을 다루지 않는 경우가 드뭅니다.

'민족주의와 통일지상주의의 온상' 민주노동당은 물론이고, '한 번 차떼기는 영원한 차떼기' 한나라당과 '고만고만 골목대장 아슬아슬 놀이터' 대통합민주신당도 죄다 통일을 강령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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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통일원과 통일원과 통일부도 있습니다. 국토통일원은 1969년 설치된 중앙행정부서입니다. 민족 개념은 빼버린 채 영토 개념으로만 통일을 하려 했던 당시 위정자의 시각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국토통일원은 1990년 통일원으로, 통일원은 98년 통일부로 바뀌었습니다.

통일은 이렇듯 당위로 우리에게 인식돼 있습니다. 합참의장의 선제공격 발언으로 남-북/북-남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고 하는 근본 까닭이, 통일을 당위로 인식하는 우리 태도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과연 그러해야 할 까닭이 무엇인지 한 번 따져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하지 않아도 될 까닭이 있는지도 물론 물어봐야 합니다.

'한 겨레 두 나라'로 서로 인정하면 그만

잘라 말하자면, 저는 통일을 그리 바라지 않습니다. '한 겨레 두 나라'로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 체제만 이뤄지면 또 그로 말미암아 군비 축소가 이뤄지면 그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일본이나 중국이나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를 오가듯 자유 왕래랑 이민 따위가 권리로 보장되면 충분하지 않을까 여기는 것입니다.

옛날 한 나라였으니 언젠가는 한 나라로 합쳐야 된다는 논리는 너무 허약하다고 저는 여깁니다. 갈라질 수도 있고 합칠 수도 있지만 이는 당위가 아니라 당대 주권자들의 선택에 달린 일입니다.

지금 예상할 수 있는 통일은 자본 주도 통일입니다. 시쳇말로 하자면, 삼성왕국의 지배영역이 백두산 자락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천박함과 치명적인 돈독이 금강산과 대동강을 더럽히는 통일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통일투쟁의 대표 선수 김남주(1946-94)가 생전에 통일을 반대하는 시를 남겼음을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통일지상주의자 비슷한 풍모를 가진 시인이면서 동시에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전사였던 김남주가, 조금은 비장한 투로 '겨레의 마지막 순결 너 백두산 기슭이여'를 썼더군요.

"백두산이여, 자본의 유혹에 치맛자락 걷어올리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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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독수리타법이 이채롭군요.

여기서 대한민국은 "농사짓고 산다 하면 / 총각이 시집 올 처녀를 구하지 못하는 나라", "시집갈 열아홉살 꿈을 보듬고 / 거울 앞에서 얼굴 붉혀야 할 처녀가 / 하루 세 끼의 밥과 잠자리를 위해 / 도시의 뒷골목에서 몸을 파는 나라", "가을의 결실을 맺어주던 벌 나비가 / 농약에 취해 / 봄의 언덕에서 / 떼죽음을 당하는 나라"입니다.

"바닷가에 가면 뻘밭에서 / 폐수에 질식당한 꼬막이 / 입을 벌린 채 숨을 헐떡거리고 / 강가에 가면 강물 위에 / 물고기가 허옇게 배를 드러내놓고 / 송장으로 떠다니는 나라"에서, 김남주는 "이제 북에 대고 개방 운운 안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별 하나 밤하늘에 초롱초롱 키우지 못한 주제에", "밤이고 낮이고 술집에서 여관에서 / 제 딸년 같은 아이의 옷이나 벗기는 주제에" "무슨 속으로 그 따위 소리를 해." 자백합니다. 79년 구속됐다가 88년 풀려나온 김남주에게, 바뀐 세상은 감옥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또다른 감옥이었나 봅니다.

"통일이 안되어도 좋으니 / 천년 만년 남남북녀로 갈라져 살아도 좋으니 / 겨레의 마지막 순결 너 백두산 기슭이여 / 자본의 유혹 앞에서 치맛자락을 걷어올리지 말아라 / 너 금강산 일만이천봉 민족의 기상이여 / 자본의 위협 앞에서 무릎을 꿇지 말아라" 했습니다.

"평양 미녀 항시 대기" 룸살롱

저도 그렇습니다. 지금 통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까닭이 바로 그것입니다. 노래방이나 룸살롱 간판에서 "평양 미녀 항시 대기", "개성 미씨 30명 있음", "함흥 미인 직접 공수", "신의주 아가씨와 사리원 생과부" 따위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런 플래카드도 나붙을지 모릅니다. "아오지 처녀랑 결혼하세요." 지금 내걸려 있는 "베트남(또는 몽골 등등) 처녀와 결혼하세요",도 생각 같아서는 확 뜯어내 버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저토록 한국 자본의 식탐에 절어버린 조선 관련 문구까지 나붙으면, 견디기가 더욱더 힘들어지겠다고 저는 여깁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 사회운동이 자본을 어느 정도라도 통제할 수 있게 되기 전에는, 조선과 통일을 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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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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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주완 2008.03.30 13: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 참 걱정입니다.

  2. 구자환 2008.03.30 16: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휴..깜짝 놀랐네요. 이거 또 여성주의자 관점에서 토씨를 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싶었는데, 본 문의 내용이 괜한 우려였네요. ㅎㅎ. 이번은 통일된 세상과 자본과의 문제군요. 저도 역시 같은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당연 명쾌한 결론은 내리지 못했죠. 공감하면서 글 잘 읽었습니다.

  3. 밀감돌이 2008.03.30 1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양미녀 항시 대기 ㅠ 꽥 너무 슬프네요 ㅠ
    어서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심정은 그러해도 현실이 그런게 아니라 ㄷㄷㄷㄷ

  4. jyudo123 2008.03.31 1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왠지 통일되면.. 울나라 더 못살것 같지 않나요..?

    • 김훤주 2008.04.01 1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기는 하겠지만요, 그렇게 물질 측면에서보다도 저는, 이른바 정신적 행복이 줄어들고 불행한 정도가 커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요.

  5. 폐인기자 2008.03.31 16: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

    독수리타법의 가공할 위력을 보이시는 김기자님..

    우치키 저하고 그리도 똑같으신지...

    이래뵈도 독수리타법으로도 젊은 놈들에게 절대 안지는 실력을 자랑합니다.

    가운데 손꾸락보다는 집게 손꾸락이 더 빠른것 같은데..하번 바꿔보심이 어떨런지요?

    • 김훤주 2008.04.01 1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동감입니다. 독수리타법 또한 한 시대의 산물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사진에 있는 김남주 시인은 직전 10년 동안 감방살이를 했으니 어떻게 자판 두드리기를 익힐 기회조차 빼앗기고 만 셈이지 않을까요.

    • 폐인기자 2008.04.01 2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이구..이런실례가~
      제가 이젠 나이가 들어 눈이 그만 침침해지는 바람에.

      김남주시인을 김훤주기자님으로 착각했습니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쩐지 사진이 좀 쇠했다 했습니다.

    • 김훤주 2008.04.02 0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그런 착각이야 누구나 하실 수 있죠. 저도 특종 기대하고 있습니다. 빨리 보고 싶습니다. 궁금해서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