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과 블로거 간담회 해봤더니…

행정기관과 국민 사이에서 언론의 역할은 뭘까? 당연히 국민의 입장에서 행정기관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국민의 올바른 여론과 요구를 전달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행정기관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도 포함돼 있다.


'기존 언론'이라 할 수 있는 경남의 신문과 방송들은 과연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중에서도 경남의 교육행정을 총괄하고 있는 경남도교육청, 그리고 그곳의 수장인 권정호 교육감의 정책과 각종 교육현안에 대한 그의 철학은 바르게 전달되고 있을까?

◇블로거 간담회 왜 열렸나 = 사실 지금까지 절대다수의 지역주민들은 그런 정보를 '기존 언론'이 일방적으로 전달해주는 기사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 언론'의 보도가 앞 뒤 맥락을 생략한 채 왜곡된 것이라 해도, 그 진위를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사실상 행정기관에 대한 취재 권한과 정보 접근권이 '기존 언론'의 기자들에게 독점돼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감실에서 시작된 간담회는 식당으로까지 이어졌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물론 기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도 블로그나 교육청 홈페이지 게시판 등을 통해 꾸준히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산YMCA 이윤기 기획부장이 지난 1월 자신의 블로그
에 쓴 '초등학교 우유 강제급식 중단하라'는 글이다. 경남도내 학교에서 아이의 체질이나 식성에 관계없이 사실상 강제로 우유급식을 함으로써 아이와 학부모의 선택권을 박탈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 글은 무려 13만 명 정도가 읽었고, <경남도민일보> 지면에도 실렸다. 그러자 경남도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학부모와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공문을 보냈고, 학교에서는 3월 개학 이전에 '우유 급식 희망 조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개인블로거가 '기존 언론'과 협력해 교육행정의 잘못된 관행을 바꾼 좋은 사례였다.

그러나 기자가 아닌 일반시민이 교육감을 직접 만나 '기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교육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민감한 현안에 대한 답변을 요구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경남도민일보>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뉴스콘텐츠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에서 활동 중인 블로거 5명과 권정호 경남도교육감의 간담회를 주선했다.

지난 17일 오후 6시 30분부터 3시간 가량 이어진 '권정호 경남교육감-블로거 간담회'는 그렇게 하여 이뤄졌다. 당초 업무시간 중 사무실에서 열린 예정이었던 간담회는 교육감의 바쁜 일정 때문에 두 차례에 걸쳐 시간이 뒤로 미뤄졌고, 결국 늦은 시간까지 식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논쟁 수준으로 벌어진 토론 = 간담회는 최근 교육계의 뜨거운 현안이 되고 있는 △연합고사 부활과 △독서 인증제 △학교운동장 인조잔디 조성 △우유 강제급식 △체벌 문제 △야간자율학습 △일제고사(학력진단평가)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교육감의 답변을 듣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독서 인증제와 일제고사, 우유 강제급식 등 일부 문제의 경우, 거의 논쟁 수준으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자리에 함께 한 기자의 느낌으로는 독서 인증제와 체벌, 성교육 문제 등에서는 약간 구세대 특유의 보수적인 교육관이 엿보였고, 인조잔디에 대한 생각과 무상교육·무상급식에 대한 확고한 철학, 그리고 교육계 내부의 권위주의 문화를 비판하는 대목에선 30·40대를 넘어서는 진취적인 사고가 돋보였다.

권정호 경남교육감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그러나 연합고사 부활, 야간자율학습, 일제고사 등 현안에서는 일단 비판적으로 보면서도 교육감으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고민을 드러냈다. 즉 연합고사의 경우, 교육감은 "아직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무시험으로 인한 부작용도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부활 요구가 계속 나오고 있고, 경남만 유일하게 무시험을 고수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그래서 그는 "찬·반 양쪽 입장을 충분히 검토하고, 공청회도 거쳐서 결정하겠다"면서 "만일 (부활하지) 않는다면, 무시험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대책까지 충분히 수립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일제고사(학력진단평가)의 경우 전국의 모든 학교가 같은 문제를 가지고 학생들을 일렬로 세우는 평가방식의 문제점을 수긍하면서도 "경제적(예산)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동출제를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교육감이 따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돈의 든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하지만 "이미 중간고사 등 다른 시험도 있는데, 일제고사 성적 만으로 '부진아'라는 낙인을 찍어 서열을 매기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니냐"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런 ('부진아'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했다.


강제적인 야간자율학습에 대해서도 권 교육감은 이렇게 말했다.

"참 심각한 문제다. 교육청 단위에서도 의견이 모여지지 않는다. 아이들 부담 줄이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한다지만, 안 하면 집에 가는 게 아니라 학원을 간다. 그래서 하지 마라고 할 수도 없다. 결국 지역 특성에 따라 교장 책임 하에 민주적으로, 가급적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하라고 했다."

학교 운동장을 인조잔디로 조성하는 데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요즘 경남지역의 학교에서 인조잔디 시공을 많이 하는데, 그건 교육감의 의지로 추진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아뇨"라고 딱 잘라 말했다.

"오늘도 고성의 한 학교에서 인조잔디를 조성하겠다는 요청이 왔길래 '노'라고 했다. 내가 진주교대 총장으로 있을 때 체육과 교수가 좋다고 해서 (인조잔디를) 했는데, 4년 만에 다 걷어냈다. (인조잔디가) 좋은 거라면 하지만, 안전성이나 좋은 점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안 하는 게 좋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체육진흥공단과 지자체에서 돈을 대주니 너도 나도 인조잔디를 하는 붐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결정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새로 추진하려는 곳에는 '노'라고 한다. 돈이 좀 더 들더라도 가급적이면 천연잔디로 하는 게 좋다."

천연잔디에 대해서도 블로거 이윤기 씨는 문제를 제기했다. "천연잔디도 일단 깔아놓고 나면 '관리'가 시작되면서 아이들에게 이용을 제한하게 된다. 맨 땅에 줄을 그어놓고 하는 놀이문화도 없어진다."

이 지적에 권 교육감도 수긍했다. 잔디가 좋은 점도 있지만, 아이들은 역시 흙에서 뛰노는 게 정서에도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조잔디는 5년 뒤 엄청난 폐기물이 된다는 점도 인정했다. 문제는 BTL(민간투자방식)으로 짓는 학교는 100% 인조잔디를 시공한다는 것이다. 체육진흥공단에서 돈이 나오는데, 그걸 안 하면 손해 아니냐는 인식이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유 강제급식 문제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질문이 이뤄졌다. 이윤기 씨는 "지난 1월 문제제기 후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그 문제가 학교운영위 안건으로 올라왔고, 학부모와 아이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면서 "하지만, 경남도내 전체 학교로 제대로 파급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어떤 학교는 아이들이 우유를 잘 먹지 않으니 초코와 딸기우유를 섞어주는 학교도 있다. 초코·딸기우유는 화학첨가물이 들어가 발효도 안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 교육감은 이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인정했다.

"그건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백색우유가 원칙이다. 그러나 문제는 학교의 영양사들이 우유까지 포함해서 칼로리를 짠다. 그러다 보니 더 고쳐지지 어려운 것 같다. 교장의 책임 하에 학부모들의 의견을 들어서 결정하도록 지도하고 있는데 잘 안된다."

이윤기 씨는 다시 이렇게 따졌다.

"다른 지역은 교육청이 의지를 갖고 지도하니 다 된다고 하더라. 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지도해달라."

이에 권 교육감은 "교육청의 지침은 강제급식 금지다. 하지만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피해 갔다.

◇ 간담회 상세 내용, 여기서 확인하세요 = 기자도 블로거의 자격으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교육관료들의 성향상 교육감 당선 후 조직장악이 잘 되지 않았을 텐데, 어땠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는 솔직히 선거 때 상대후보 쪽의 고소로 인해 재판이 진행되던 동안에는 조직 장악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대법원 최종심에서 무죄선고를 받고 나니 그런 문제는 말끔히 해소됐다는 것이다.

교육감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블로거들. 교육감 오른쪽에 앉아있는 이는 비서실장.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교육감이 된 후, 가장 심각하게 느낀 교육계의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도 물어봤다. 이 대답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왔다.


'관행'이 가장 큰 문제인데, 교육감에 당선된 후 시·군교육청을 방문해 간담회를 끝나고 나오는데, 교장들과 악수를 하면 교육감의 얼굴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인채 하더라는 것이다. 세상에 악수를 하면서 눈을 마주치지도 않다니…. 그래서 그런 관행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은 모두들 서로 눈을 보면서 악수를 한단다. 심지어 밥 먹는 자리에서 교육감에게 술을 따를 때 꿇어앉아 따르는 관행도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역시 바꿔냈단다.

또 재미있는 얘기가 있었다. 과거 교육감이나 교육장은 물론, 장학사가 일선 학교를 방문하게 되면 미리 대청소를 하고 화분을 갖다놓는 등 법석을 떨었는데, 그런 관행을 없애기 위해 아예 지역을 방문할 때 어느 학교에 갈 것인지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한 지역에선 교육장이 모든 학교에 비상대기를 하라고 하는 바람에 '5분 대기조'라는 비판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고, 청소와 환경미화로 법석을 떠는 일도 사라졌다고 한다.

경남에서 처음 열린 교육수장의 블로거 간담회는 민감한 교육현안들에 대한 교육감의 솔직한 생각과 고민을 들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또한 기존의 신문과 방송이 지면과 시간의 제약으로 충분한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는 데에 비해, 블로그는 그런 제약이 없다는 점에서 앞으로 올라올 블로거들의 간담회 포스팅(글 발행)이 기대된다.

간담회에 참석한 블로거들과 블로그 주소는 다음과 같다.

△정부권(파비) : http://go.idomin.com (파비의 고블로그)
△이김춘택(봄밤) :
http://blog.daum.net/bomnalbam (깜박 잊어버린 그 이름)
△나현주(달그리메) :
http://blog.daum.net/090418nana (하슬린)
△이윤기 :
http://www.ymca.pe.kr (세상읽기, 책읽기, 사람살이)
△김  욱(커서) :
http://geodaran.com (거다란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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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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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비 2009.06.22 0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육감 오른쪽에 앉은 이가 비서실장 아닌가요?

  2. 대한민국 황대장 2009.06.22 13: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리 민감한 사항이어도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빨리 내야 하지 않냐는... 좀 모자란 제 생각입니다 ^^;;;
    즐거운 한주 되세요 ^^

  3. 양깡 2009.06.22 1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경남과 부산지역 블로거들이 가장 활발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파비님과 커서님께서 참석하셨었네요~ 좋은 포스팅 기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