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거짓말도 사랑해"

며칠 전 아침 자동차를 함께 타고 가는데 아들 현석이가 “그의 거짓말도 사랑해.”라고 노래하듯이 흥얼거리기에 물었습니다. “노래냐?” “무슨 노래냐?” “힙합이냐?” “무슨 사연이 있는 노래냐?”

아들이 답했습니다. “노래 가사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났는데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너 참 예쁘다.’ 그래요. 사귀다가 결혼하자고 그래요, 별로 사랑하지 않으면서도요. 같이 살면서 마흔이 되는 해에 바람을 피워요. 그래서 빚을 졌는데 사업에 실패해 그랬다고 거짓말하고 노름으로 돈을 날린 뒤에는 또 강도를 당했다고 거짓말을 해요.”

“여자는 파출부를 나가요. 생고생을 하다가 암에 걸려 죽을 지경이 됐어요. 거기다 대고 이 남자는 또 마음에 없이 ‘사랑한다.’고 그래요. 이 여자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는 ‘난 그를 사랑해. 그의 거짓말도 사랑해.’ 이래요. 디지라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예요.”

엉뚱하기는 했지만 무슨 절실한 구석이 있어도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아들 녀석이 자기 감정을 섞지 않고,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말하는 데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감정 섞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

제가 “너 참 잘하는구나. 나는 지금도 그리 못하는데…. 나는 당위를 너무 강조하거든. 이래야 한다, 저러면 안 된다 먼저 말하는데 너는 전혀 그러지 않네. ‘이래야 되잖아요? 그런데…’라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만 얘기를 하네?” 했습니다.

“그래, 당위에 발목 안 잡히고 현실 그대로 보면 좋은 작품이 나올 거야.” 덧붙였습니다. 고3인 아들은 그림을 그리고 싶답니다. 대학도 그런 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벌이는 한 달에 60만원만 돼도 되고, 하고픈 일을 할 수만 있으면 된다는 주의자입니다.

아들이, “지금 울 뻔했어요, 이 이야기하면서요.” 그랬습니다. 울먹거리도록 만드는 감정을 참아내면서 얘기했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면서 “아직 잘 안 되지만, 이래야 한다, 저래야 된다 이런 생각을 좀 안 하려고는 해요. 제게는 좀 안 되고 저랑 관계없는 일이나 사람에는 좀 돼요. 이런 걸 방관이라고 하나….” 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는 이 대목에서 잠깐 운전대를 놓았습니다. 아들을 한 번 더 바라봤습니다. 시쳇말로 모르는 사이에 머리가 굵어진 것 같았습니다. “아니야 그런 것은 방관(傍觀)이 아니고 달관(達觀)이라 해야 되겠지. 열여덟 나이에 달관까지 하기는 아직 어렵겠지만….”

이 친구가 그림을 그리면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한 번 더 들었습니다. 제 아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걱정을 꽤 했는데, 앞으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이대로라면 책을 읽지 말라고 말려도 나중에는 읽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덤으로 알게 된 '디지'라는 가수

저는 이날 아침 우리 아들과 이렇게 속 깊은 얘기를 주고받은 선물로 디지라는 스물여섯 살짜리 젊은 음악인을 알게 되는 덤을 얻었습니다. 디지가 부른 노래 ‘나에게 거짓말을 해봐’도 알게 됐습니다.(제 아들은 디지를 두고 평하기를 ‘감각은 있는 것 같지만 실력은 아직 아니다.’고 했습니다.)


우연히 만났던 그녀였지
할 말이 없어 던진 한 마디 “너 참 예쁘다”
그녀는 고개 숙였지 그녀는 바보였지
그녀와 100일은 잊혀 지나갔고 아프다는 핑계로 그녀는 걱정하지
그녀에게 청혼했고 그녀는 고개 숙여 승낙했고
내 진심은 단지 노총각이 될 거란 걱정이었지 거짓 결혼이라 했지
그녀의 둘째아이 태어났지 그날 노름으로 돈을 잃고 빚을 졌지
그녀는 강도를 당했다는 나의 거짓말로 나를 걱정하지
하지만 나는 거짓말을 했지
내가 마흔이 되던 해 난 10살 어린 여자와 바람을 폈고
그 이유로 나에겐 빚이 생겼지 그녀는 사업으로 빚을 졌다는 말을 믿었고
그녀는 파출부로

그녀는 모르지 아무것도 모르지

그를 짝사랑했고 우연히 또 만났고 그가 나를 보고 예쁘다고 했지
그와 100일 되던 그날 그는 아프다고 했고 나는 진심으로 그를 걱정했지
그가 청혼했고 말없이 난 다 승낙했지
“나랑 결혼해줄래”
그와 반평생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지
영원히 그대와 함께 할 수 있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되는 날 그는 노름으로 돈을 잃고 빚을 졌지
강도를 만났다고 하지 그가 거짓말을 했지
하지만 나는 그의 안부를 물었지
내가 마흔이 되던 해 그는 바람을 폈고 그가 남긴 빚으로 난 파출부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었지 울고 싶지만 울 수 없었지

그를 사랑하지 그의 거짓말도 사랑하지

이제 그녀가 가진 건 암으로 식어가는 몸 나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내게 남은 아이와 집을 걱정하며 울지 마지막으로
“사랑해” 라고 말해봤지 그년 말없이 울지
“난 괜찮아”
우는 모습에 난 지난 내 거짓말을 떠올렸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기에

지금 나는 암으로 식어가고 있지 그는 나를 위해 울고 있지
이제 나는 하늘로 가야하지 하지만 행복하지 그는 나에게
“사랑해”
라고 하기에 그의 거짓말을 용서할 수 있기에
내 남은 생 그대와 그대아이가 날 지켜보기에

그녀는 모르지 아무것도 모르지
그를 사랑하지 그의 거짓말도 사랑하지

먼저 가서 미안해요 다음 생에도 다시 만나요….

디지, 총선에 나왔다니 더 좋아졌다

디지가, 본명이 김원종인 디지가,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려고, 이번 총선에서 서울 강남 갑에 출마를 했다고 합니다.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되기 전에 ‘김디지를 국회로’ 라는 노래를 길거리 ‘게릴라 콘서트’에서 선보였다가 선거관리위원회 단속에 걸려 끌려가기도 했답니다.

우습게도, 공연을 지켜본 이들은 죄다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이었다고 합니다. 당위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런 친구가 있어서 세상은 즐겁습니다. 또 이런 친구가 있음을 알게 해 준 아들 녀석이 두 겹 세 겹으로 고맙습니다.

김훤주

신고
글쓴이 : 김훤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나그네 2008.03.31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지나다 봤어요.
    저도 우연히 티비에서 이 가수 본것 같은데.. 그저 그런가보다 했었죠.
    가수에 대해선 잘 모르니 생략하고, 노랫말 너무 적나라하니 슬프네요.
    하지만 그거랑 상관없이 님 아드님 같은 젊은이들이 있어서 참 좋아요.
    우리가 그냥 나이만 먹는게 아니라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면 마음이 참 따뜻하겠죠.
    그래서 젊은이들이 희망인거겠죠.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는 시각.. 정말 중요하죠. 아드님 참 보기 좋습니다.

  2. 폐인기자 2008.03.31 16: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 맞어! 이런놈을 국회로 보내야 해!

    어차피 그놈이 그놈인 국횐데 이런 젊은애 보내서 뭔가 느끼게 해줘야 해.

    70먹은 할배놈하고 맞짱을 뜨면 볼만할텐데..

    아쉽다.하필이면 강남이냐? 지역구가 문제로다.

    김기자님 어디 만만한 좋은 지역구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