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 소속 기자들, 파업 보도 신경 좀 써야 겠다. 아니 신경 쓰일 수밖에 없겠다.

파업에 들어간 부산지하철 노조에서 국제신문의 관련 보도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제목이 '국제신문에는 노동자가 없다?'였다. 그런데 당연히 국제신문에도 언론노동자가 있다. 그들이 소속된 노조는 전국언론노조 국제신문 지부다.

언론노조도 한나라당이 언론악법을 국회에 상정하는 순간 파업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하철노조의 파업을 비난(?)하는 듯한 보도를 낸 것이다.

아마도 짐작컨대 기사를 쓴 기자도 언론노조 조합원일 것이다. 지하철노조의 이 성명서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궁금하다. 같은 기자이고, 언론노동자인 내가 봐도 이날 국제신문의 파업보도는 좀 심했다.


대개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나 지하철 등이 파업에 들어가면 그걸로 인해 불편을 겪을 시민의 입장을 중심에 두고, 사측과 노조를 싸잡아 비난하는 기사를 쓴다. 그게 양비론을 펼치기 가장 편했기 때문이다. 노조에 대해서는 '자기들의 밥그릇을 위해 시민 불편을 초래한다'는 논조로 쓰기도 한다.

하지만, 노동자의 파업이라는 것 자체가 노동자의 밥그릇(권리)를 지키기 위한 최후수단이다. 그런 논리로 파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면 가능한 파업이라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언론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명분도 있고, 밥그릇도 지키면 좋겠지만, 오직 밥그릇만 지키기위한 파업도 있다. 그렇다고 파업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번 지하철노조의 파업은 '시민 안전'이라는 명분도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쓰는 건 확실히 문제가 있는 기사다.


더구나 이번 지하철노조의 성명서는 언론노조 조합원으로서 기자의 정체성에 결정타를 날릴 정도로 잘 쓴 성명서다.

앞으로 모든 파업사업장에서 이런 식의 언론보도를 지적하는 성명서가 나온다면, 언론노조 소속 기자들 참 난감할 것이다. 국제신문 노조 집행간부들도 참 난감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물론, 얼굴 두꺼운 조중동 기자들은 콧방귀도 안 뀌겠지만….

역사에 길이 남을 멋진 지하철노조의 성명서를 여기에 올려둔다.

제목 : 국제신문에는 노동자가 없다?
국제신문의 왜곡된 지하철 파업 보도에 대한 논평

1. 오늘(6/27.토) 국제신문은 부산지하철 파업 소식을 1면 머리기사, 3면 해설기사 및 23면 사설을 통해 상세히 보도했다.

각 기사 제목이다.

1면 머리기사 <'콩나물 지하철' 시민들 뿔났다>
3면 해설기사 <궤도이탈한 노사 '반송선 줄다리기'>
23면 사설 <폭염속 부산지하철 파업, 시민들이 피해자>



2.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조ㆍ중ㆍ동 OUT 불법경품 추방] 소책자를 발간하여 조중동의 왜곡보도 사례를 모아 비판한 적 있다.

소책자 중 '조중동의 노동자ㆍ노동운동 죽이기'편을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중략) 조중동은 항상 재벌과 기업주의 편에 서서 노동자를 악의적으로 공격했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왜 그런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는 쏙 빼먹고 "불법파업으로 물류대란, 교통대란, 시민 불편 가중, 파업으로 경제손실 OO원에 이르러" 따위로 악의적인 왜곡보도를 일삼았다. 시민들로 하여금 노동자와 노동조합, 노동운동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을 갖도록 부추긴 것이다. (중략)

오늘 국제신문의 부산지하철 파업 보도는 위 왜곡사례 설명처럼 '교통대란', '시민 불편 가중'에 중심을 둬, 시민들이 노동조합과 파업에 막연한 부정적 시각만 갖도록 유도한 전형적 기사다.

3. 오늘 국제신문의 보도는 파업이 발생하게 된 원인에 대한 분석은 제쳐 두고, 현장 나열식 보도를 통해 시민 불편만 집중 강조했다.

1면 머리기사 <'콩나물 지하철' 시민들 뿔났다>

전형적인 현장 나열식 보도다. 특히 기사 마지막 부분의 인터뷰 내용 "이 어려운 시국에 모든 시민이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시민의 발까지 더디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는 지하철 노동자의 파업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부정적 시각만 강조했다.

또한 기사 내용 중 '짜증', '불편', '항의', '정체현상', '삿대질', '콩나물 시루', '불만' 등 부정적인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여 지하철 파업에 따른 시민 불편에 집중하여 노동자의 파업을 부정적으로 부각시킨 사례다.

3면 해설기사 <궤도이탈한 노사 '반송선 줄다리기'>

'궤도이탈'은 비정상적 상황을 묘사할 때 쓰는 말이다.

부산지하철 노사가 반송선 운영 방식을 놓고 쟁점을 형성한 것은 시민 안전과 지하철 적자 중 어디에 중점을 둘 것인 가하는 의견의 대립이다. 현재 부산지하철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노사가 보는 시각이 다른 점이다. 이 속에서 노동조합은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파업을 진행하는 것이고, 계속 이를 놓고 교섭을 통한 해결점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제목은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단정하고, '줄다리기'란 용어를 통해 노사가 이기기 위해 각자 떼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같은 기사의 장기화 가능성과 향후 전망이라는 소제목 아래 기사 내용에서도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공사의 발언은 "노조가 협상을 제의하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인 반면, 노조의 발언은 "당분간 협상은 없을 것으로 보이며 파업 장기화도 염두에 두고 있다"로 작성하여, 마치 공사는 협상 의지가 있고 노조는 협상 의지가 없이 파업을 계속 끌고 가려는 의도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리고 마무리도 '열차 감축 운행으로 시민들의 불편과 비난도 노사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시민들의 불편과 비난에 지하철 파업에 대한 시각을 보이고 있다.

23면 사설 <폭염속 부산지하철 파업, 시민들이 피해자>

노동자 파업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 사례로 조선일보의 '이 가뭄에 연대파업 비상'과 중앙일보의 '엎친 가뭄속 덮치는 파업'이라는 제목을 대표 사례로 든다.

사설 제목도 다를 바 없다. 노동자는 가뭄 속에서도, 폭염 속에서도 파업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악의적 왜곡 사례다.

4. 국제신문의 지하철 파업 보도에는 '왜'가 없고, '쟁점'만 있다.

 쟁점과 전망을 보도한 3면 해설 기사를 보면, 쟁점에는 파업 원인에 대한 분석이 빠져 있고, 전망에는 핵심 쟁점의 해결 방안이 없다. 해설 기사가 단순하게 노사 주장을 나열하는 데 머물러 있다.

부산지하철이 파업을 하게 된 원인은 인력 몇 명 배치에 대한 이견 때문이 아니다. 반송선과 기존 노선의 안전한 운행과 노동자의 노동조건 보장 및 고용 안정에 대한 주장 때문이다. 그런데 국제신문은 마치 인원 배치 숫자 놀음으로 지하철 파업이 이뤄진 것처럼 보도했다.

부연하면, 지하철 파업의 핵심 원인이 무엇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점이 전혀 없는 기사들이라는 말이다.

5.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5일 총파업 지침을 발표하여, 언론악법 날치기 상정 시도 즉시 총파업 돌입과 상경 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언론노동자들은 언론악법 저지를 위해 올 초 두 차례의 파업 투쟁을 펼치기도 했다.

언론노동자의 파업으로 뉴스가 제대로 만들어 지지 않고, 즐겨 보는 예능프로그램이 결방하여 많은 독자와 시청자가 불편을 겪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파업을 멈추라고 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지하철 노동자의 파업을 단순하게 '시민 불편'을 이유로 빨리 멈추라는 식의 보도도 적합하지 않다. 언론 노동자가 이런 기사를 만들었다면, 자신의 '노동자성'을 잃었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전혀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언론노동자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언론악법을 반대하면서 파업하는 이유와 지하철노동자들이 부산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협하는 반송선 무인시스템과 지하철 구조조정을 반대하면서 파업하는 이유는 같은 선상에 있다.

국제신문 기자들도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 노동자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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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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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추가하여 2009.06.28 2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물노조의 파업에도 기자분들께서 같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최소한 이해하려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걸핏하면 "물류대란 가시화", "산업피해 00조원". 이런식으로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만 쓸게 아니라, 그들의 노동현실이 어떤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살아가는지, 우리의 이웃으로서 그들을 바라봐 주면 좋겠네요.